실존하는 인간의 자유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실존이란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을 말하며 인간을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며 흔히 던지는 질문인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나는 왜 살아가는가에 대한 답으로 사르트르는 인간이란 목적 없이 "그저" 태어난 실존적인 존재일 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본질(목적)을 가진 다른 존재들과 달리 스스로 본질(목적)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본질이란 무엇인가, 본질이란 어떤 사물이 본래 갖는 목적성을 뜻하는데 컵의 본질은 물을 떠서 마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질만을 따지고 든다면 컵도 컵이고 바가지도 컵이고 화분도 컵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목적을 반드시 수반하는 "본질"적인 존재보다는 목적 없이도 존재가 가능한 "실존"적 존재가 항상 앞서 존재하기 때문에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이야기를 사르트르는 하고 있다.
야~ 저거 다 내가 한 거야
저 산 중턱에 있는 나무들 다 내가 심은 거야
너 xx이라는 어플 알지? 그거 내가 개발한 거야
내가 옛날에 xx건설에 근무할 때 저 다리를 세웠어 내가 xx전자에 근무할 때 그 스마트폰을 개발했잖아
예전에는 "왕년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저 지나간 세월의 영광을 잊지 못한 아저씨들의 푸념 정도로 생각했었다. 현실의 초라함을 이겨내기 위해 과거의 영광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때때로 처량해 보일 수는 있겠으나, 빛났던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추억을 동력 삼아 현실을 살아가고자 하는 숭고한 노력을 어찌 가벼이 여길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한 사람의 역사를 알게 되고 노경의 그리움 같은 것이 느껴져 이제는 그런 이야기들도 귀담아듣게 된다.
그런데 이런 자기 긍정과 자신의 업적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히 연배가 지긋한 신사숙녀 분들만이 입에 담는 말은 아니다.
아 이거? 내가 공방에 가서 직접 제작한 의자야 예쁘지?
D.I.Y라고 하는 제품이 유행한 지 오래되었다. 이는 완제품이 아닌 부품 형식으로 된 제품을 구입하여 소비자가 직접 제작, 가공하는 형태의 제품을 의미한다. 왜 사람들은 이런 번거로운 행위를 하는 것일까. 완성되지 않은 제품이기에 인건비가 빠져 있어서 다소 저렴한 가격의 D.I.Y 제품들도 많지만, 의외로 완제품보다 비싼 가격을 주고 D.I.Y제품을 구매하는 경우도 꽤 많은 것을 보면 이것은 다소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처럼 보인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목적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스스로 존재하는 목적을 찾을 자유가 부여되고, 인생은 그 자유를 바탕 삼아 목적을 찾아가는 여정과도 같다. 자유로운 인간은 목적이 없기에 각기 다른 가치를 추구하게 되지만 몇 가지 공통되는 지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인간은 언제나 자기 효능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갈수록 성취가 어려워지고 무언가를 이뤄내기 어려워지는 세상 속에 이런 D.I.Y. 같은 방식의 소비 패턴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인간은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을 때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게다가 그것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만족감 역시 비례하게 된다. 백성을 위해 한글을 개발해 낸 세종대왕과 오늘 수업시간에 스스로 바느질을 통해 손가방을 만들어 낸 우리 반 아이는 세상에 대한 기여도라는 측면에서는 하늘과 땅만큼의 커다란 격차가 있을지는 몰라도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에 있어서는 동등한 마음을 느끼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하는 인간은 목적이 없기에 자유롭다. 자유를 바탕으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찾고자 한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로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자기 효능감을 느끼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자부심이 된다. 우리는 무언가 나의 자취를 남겨 놓았을 때 자부심을 느낀다.
그것의 최고봉은 자식이 아닐까. "자식은 부모의 자부심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자식을 본인의 악세사리쯤으로 여긴다는 뜻이 아니다.
자식이란 목적 없이 태어난 인간인 내가 목적을 갖게 만들어주는 존재이며 실존하는 인간인 나를 목적을 가진 존재로 치환시켜줄 수 있는 거대한 계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고 자부심을 갖게 만들어주는 존재, 그것이 자식이며 인간이 세상에 남기고 갈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며 아름다운 흔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