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줄어들고 생각만 많아진다
대학시절 나는 이야기 보따리로 불렸다.
술이 약한 탓에 항상 제일 먼저 술에 취해 실려나갔으면서도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일주일에 여덟 번 술을 퍼마셨다.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사실 여부는 물론이거니와 출처조차 불명확한 각종 루머와 소문이 끊임없이 나의 귀로 흘러 들어왔다.
매일 술을 마시고 다닌다는 것이 이미 익히 소문이 나있던 탓에 호사가들은 어디 새로운 재미난 소문이 없나 궁금해하며 끊임없이 자신들의 술자리로 와달라는 러브콜을 보내왔다. 그때는 그것이 인기의 척도라는 풋내 나는 생각에 젖어 있었고, 스스로가 마치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을 하며 지냈던 유치한 시절이었다.
그런 탓에 심할 때는 하룻 저녁에 3자리의 술자리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기도 하는 등,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함께 술을 마시는 친구들에게 굉장히 실례가 되는 행동을 서슴없이 벌이면서도 그것이 실례인 줄 몰랐던 무지하고 무례한 어린애였다.
가만히 있어도 각종 정보를 물어다 주는 정보원들이 주변에 넘쳐났다. 저녁만 되면 전날 있었던, 아니 심지어는 당일에 벌어진 사건들조차 알게 될 정도로 내가 알고 있는, 혹은 알지 못하는 타인들의 사건과 타인의 경험, 타인의 관점이 끊임없이 나에게 공급되었다. 나 역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했기에 끊임없이 무엇인가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남의 이야기를 하고 듣는 것도 재미는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당시의 나는 잘난 것도 하나 없었으면서 나 잘난 맛에 사는 근거 없는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던 모자란 놈이었다. 이런 스스로를 그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했다는 것은 불행이지만 그런 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었던 친구들이 주변에 많이 있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주변의 지인들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서 내가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된 것인지,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떠들고 있는 나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당시 나는 재수생의 생활, 10여 종의 아르바이트 경험, 교통사고 유경험자, 1년 간의 입원생활, 댄스동아리 회장, 단과대학 회장, 타대학 중퇴, 가난한 삶과 같은 소재들에 적당한 유머를 뒤죽박죽 버무려 나의 경험과 관점을 정신없이 뿌려댔다. 알맹이도 없는 생각들과 대단치도 않은 경험을 술안주 삼아 웃고 떠들 수 있었던 시절이 가끔은 그립기도 하다.
그때는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을까, 아니 할 말이 많았다기보다는 덜 성숙했던 뇌가 자기 검열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탓에 말 그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뱉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말하기 전에 생각부터 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 도무지 무슨 말을 쉽게 뱉을 수가 없다. 새로운 경험 자체가 부족하여 말할 소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놈에 "눈치"때문임이 분명하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에 너무 오랫동안 노출되어온 탓일까,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착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 되라는 말 때문일까. 내가 하려는 말이 이미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뻔한 말인 것 같아서 하나마나한 말에 한마디 보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입을 떼려다가 멈춘 적도 부지기수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머릿속에 새로운 것이 쌓이면 쌓일수록, 이런 말도 뻔한 말 같고 저런 말도 뻔한 말 같아 입을 떼기가 어려워진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가감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험은 줄어들어 내 안에 뱉어낼 것들은 고갈되어 가는데 그마저도 복잡해진 머리 덕에 하나 둘 걸러내고 있으니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필터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저 사람의 입을 가리고 있는 마스크가 전염병을 예방하고자 하는 본연의 목적에 더해 듣는 이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민망함을 예방하기 위해 단어와 문장도 한번 걸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 당신은 지금 마음껏 배설의 욕구를 누리고 계시는군요. 참으로 부럽습니다."라는 진심 어린 마음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