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호 Jun 25. 2020

소모됨은 어떻게든 티가 나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 내지는 말자

오래 사용하다 보니 낡고 닳아서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거나 소멸되는 것을 우리는 '소모된다'라고 표현한다.


 운전을 하다 보면 가끔 하얀 연기를 쿨럭이며 힘겹게 달리고 있는 자동차를 보게 된다. 마치 매운 것을 급하게 들이켜다 사레에 들려서 기침을 할 때 튀어나오는 음식 파편을 마주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여 심각하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연식이 좀 되었거나 관리가 안된 차량은, 마치 우리의 장기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여 쇠하여지듯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본인의 기력이 다해감을 애처롭게 드러낸다. 달달거리며 힘겹게 달려가는 모습에서 인간의 노년기가 겹쳐 보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무리 겉이 번쩍거리게 광을 내고 화려한 옵션이 많이 붙어있는 명차라고 할지라도 세월 앞에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감춘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소모되고, 타들어가며, 고갈되어간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다. 젊은 시절에는 굽은 길도 급하게 꺾으며 돌아나가기도 하고 긴 고속도로를 200km에 가까운 속도로 질주하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엔진오일이나 브레이크 페달을 갈아주지 않아도 별다른 잡음도 들리지 않고 급제동도 곧 잘한다. 한데 트렁크에 흙 묻은 유모차도 실어 나르고 뒷좌석 카시트에 앉은 아들 녀석의 발길질도 좀 맞아주고 의도치 않게 접촉사고도 가끔 내다보니 어느 날 갑자기 낡았다는 느낌이 확 들 때가 있다.  어느 순간 안팎으로 생활 흠집도 많이 생긴 것을 보니 이런 상처들이 언제 생겼나 싶다가도 가던 길이 급해 대수롭지 않게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달달거리며 달리던 자동차가 더욱 힘겨워 보이는 순간이 있다. 멈춰서 있거나, 멈추어 있다가 다시 출발할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던 하얀 연기는 저런 순간에 더욱 격하게 쿨럭거리며 연기를 토해낸다. 그렇다 뿜어낸다기보다 토해낸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다.


 멈추는 순간 시간은 더욱 가혹하게 흘러간다. 무기력해지며 다시 움직이기 힘들게 만든다. 시동이 꺼진 자동차를 다시 부드럽게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천천히 움직여야만 한다. 엔진 워밍업도 충분히 시켜주고 엔진오일도 좀 좋은 걸로 갈아줘야 그나마 제기능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조이고 닦아도 이미 소모되어버린 것은 어떻게든 티가 나게 마련이다.  


 그래도 한 번 티가 나지 않게 애써보자. 소모되었다는 것을 세상에 들키는 순간 주인은 곧바로 자동차를 교체할지도 모를 일이다. 운이 좋아 새 차를 구입해도 헌 차를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여겨 마당 한쪽에 쓸모를 다한 헌 차를 위한 공간을 내어줄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자동차를 너무나도 애정 하는 주인을 만날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은 오직 운이 좋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보통은 폐기처분이 되거나 중고차 시장에 팔릴 뿐이다.


 오직 달려야 한다.


달릴 때에도 연기는 계속해서 흘러나오지만 바람에 흩날리거나 운전에 집중하느라 연기를 보지 못하게 된다. 우리 삶도 그렇다. 달려야 한다. 달리고 있을 때 연기는 보이지 않거나, 볼 수 없거나, 보려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모험이 있다. 자신의 긴 여정을 끝내고 비록 쇠하여 소모됨이 드러났더라도 그간의 모험을 무사히 잘 치러냈다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티 내지 않고 박수 칠 때 떠나는 것도 멋진 일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나이를 먹을수록 입이 무거워지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