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사는 짧아서 보고 배울 것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며 가끔씩 듣게 된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길고 긴 지구의 역사를 놓고 봤을 때 가히 신생국가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역사가 짧다 보니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를 배우는 과정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럽 위주의 교육내용에 밀려 미국에 관한 내용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하지만 지정학적으로 우리와 가깝기도 하고 실제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국가인 점을 생각해본다면 유럽보다 오히려 미국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긴 하지만... 그것은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니...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면서 짧은 기간 동안 이뤄낸 산업적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짧은 시간 동안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된 미국으로부터 분명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세계 전체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국가라는 점 말고 우리나라만 떼어놓고 보더라도 정치, 경제, 문화 이념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벗어나기 어려운 처지에 처해있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한 번쯤은 미국에 대해서 조금은 살펴봐둬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집어 들게 된 책 "반전이 있는 미국사"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던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면서 재미있는 가르침을 준다. 책은 크게 3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 챕터에서는 미국인이 아니고서는 알기 힘들 것만 같은 미국의 속사정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문화, 정치, 지방자치, 각종 기관, 미국에서 주가 갖는 의미, 세계적 영향력, 사각지대 등 미국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살펴본다. 세 번째 챕터에서는 미국의 역사를 건국부터 트럼프 시대까지 큼직한 사건들 위주로 정리해 큰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미국은 특정한 주류 민족이 이끌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 각국의 나라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의 연합이기 때문에 민족성이나 고유의 정체성이 약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강력한 2개의 정체성을 갖는다. 하나는 출신지에 대한 정체성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인"이라는 국가 자체에 대한 자부심에서 비롯되는 정체성이다. 영국계, 아프리카계, 아일랜드계, 한국계라는 식의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정체성을 확실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본인들은 미국인이라는 강력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하는 또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또 한 가지 즐거웠던 지점은 미국에 대해 그간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고 그 편견을 깔끔하게 깨뜨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기독교의 나라, 미국은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나라와 같은 생각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실제로는 왜 그렇지 않은지 이 책은 차분하게 설명한다.
이 책에서는 앞으로는 중국이 미국에 버금가는 나라로 성장하여 향후 언젠가 미국을 넘어서고 세계 제일의 새로운 리더가 될 것이라는 생각 역시 아직은 까마득하게 먼 미래의 일이거나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그 이유로 국력 지수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국력 지수란 국력을 측정하는 기준을 말하는데 크게 경제력, 군사력, 문화력, 외교력 네 가지 기준이 이에 해당한다. 중국은 이 네 가지 기준 가운데 경제력 부분에 있어서만 미국의 70% 수준에 도달했을 뿐 나머지 분야에서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큰 격차를 보인다고 한다. 그나마 비교해볼 만한 경제력 조차도 인구수를 고려하면 그 격차는 다시 한번 멀어진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책의 세 번째 역사 파트였다.
영국인들이 최초로 미국 땅을 개척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꽤 다양한 이유로 진행된다.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건너간 사람들, 종교적 갈등이 벌어져 핍박을 피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 일확천금의 기회를 찾아 건너온 사람들, 유럽의 절대 군주 체제를 비판하며 새로운 이상향을 찾아 건너온 사람들,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해 건너온 사람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각자가 바라는 것을 가슴에 품고 넘어온 사람들이 얽혀 모인 곳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미국은 이때까지만 해도 영국의 식민지에 불과했으나 영국은 당시 수많은 전쟁에 휘말려 물자가 부족한 탓에 미국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강한 반발에 세금을 걷기 어려워진 영국은 묘안을 냈다. 영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다 보니 당시 미국 이민자들은 차를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러한 점을 이용해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세워 미국에 차를 독점적으로 공급하게 하였고 독점은 곧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하며 미국은 영국과 독립전쟁 끝에 독립을 하게 된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 미국은 차근차근 국가의 모습을 갖추어나가기 시작한다. 의회를 구성하고 대통령 제도를 최초로 만들어내며 유럽과 "먼로주의"를 체결하며 서로 간에 간섭을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이 먼로주의 덕분에 유럽이 한창 식민지를 확대해나가던 제국주의 시대에도 미국은 일체의 타격을 받지 않고 아메리카 대륙 안에서 무리 없이 영토를 늘려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북부는 산업 위주, 남부는 농업 위주로 발전하게 되는데 농업 위주였던 남부지방은 노예제도가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노예제도에 대한 의견 충돌이 극심해졌고 결국 "남북전쟁"이 발생하게 된다. 남북전쟁은 당연하게도 발전되고 인구도 많고 자원도 많은 북부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되고 이로써 노예제도는 폐지된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남부지역에서 빈민으로 전락한 백인들은 이런 책임을 모두 흑인들에게 전가하며 악명 높은 인종주의 테러 단체인 kkk단이 이때 결성되기도 한다.
남북전쟁 이후에 미국은 강력한 나라가 된다. 엄청나게 넓은 땅을 가지게 되었고 각 지역의 자원과 군사력, 인구가 하나로 통합되다 보니 자연스레 외부로 눈을 돌리게 된다. 먼로주의의 보호가 더 이상 필요 없는 강력한 나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미국 입장에서는 강력한 시장의 역할을 해주었던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며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의 역할을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경찰의 역할까지 부여받게 된다. 강력한 경제력과 그를 바탕으로 한 군사력을 통해 이견 없는 세계 최강국가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 외에도 각 도시들의 특성, 미국이 국토를 넓혀가게 되는 과정, 상원과 하원 의원의 선출 과정, 대통령 선거제도, 각 주들이 갖는 강력한 지방분권, CIA나 FBI 등의 국가기관이 하는 역할, 냉전 체제와 여성인권 흑인 인권의 해방, 반전운동 등에 관한 내용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꽤 많다.
한 나라에 대해서 알아봐야 얼마나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을 안다고 해서 내 삶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느냐만은 그래도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현시대에서 가장 앞서가는 나라라는 미국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에 충분한 답을 주는 책이다. 이 정도만 알고 소화해 낼 수 있어도 충분히 차고 넘친다는 생각이 든다. 가벼운 내용이 아니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잘 손질된 좋은 책을 한 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