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안 느끼한 산문집

삶을 무겁지 않게 풀어내려는 작가의 의지를 읽다

by 정 호
산뜻하다


강이슬 작가의 "안 느끼한 산문집"을 다 읽은 후 들었던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랬다. 산뜻하고 쌈빡하다.


내용 자체는 산뜻하지 않았다. 2020년을 살아가는 청춘들, 아니 어느 시대의 청춘을 거쳐온 사람이더라도 느껴봤음직한 젊은 시절의 막막한 불안감이 책의 전반에 걸쳐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숨 쉬고 있다. 청춘을 통과해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만한 삶의 무게와 그 무게들 사이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던 작은 노력들, 그런 작가의 삶의 단면이 때로는 나와 겹쳐 보여 여러 번 공감의 눈물을 자아낼 뻔도 했다.


그때마다 작가는 이런 것쯤은 별것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독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심지어 때로는 정겨운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진지해지려는 대상의 힘을 살짝 빼놓는 배려를 베푼다.


사실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욕을 접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기껏해야 "젠장" 이라던지 "제길", "빌어먹을" 정도의 일상생활에선 거의 쓰지 않는, 그야말로 텍스트의 세계에서만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단어들 정도가 날것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강이슬 작가는 그렇지 않았다. "존나" 라던지 "좆 된 것 같다"는 표현을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줄은 정말로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글이야 쓰는 사람의 자유이기에 어떻게든 쓸 수 있지만 그것이 공모전에 대상으로 당선이 되고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출판이 되었다는 사실에 유쾌한 충격을 받았다.


감상에 젖어 느끼한 글을 쓰는 것을 예방하고자 처음부터 책의 제목을 "안 느끼한 산문집"으로 결정하고 글을 써 내려갔다는 작가의 태도에서 그녀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유추할 수 있다. 나에겐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입장에선 오글거리고 유치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시간이 지나 내가 내뱉은 글이 개똥철학처럼 비추어져 이불 킥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자 자기 절제에 도달하고자 하는 수행이었을 테다.


글을 쓰는 동안 너무나 즐거웠다는 그녀. 그녀의 글을 가만히 읽고 있으면 즐거운 일은 하나도 없다. 고되지만 결코 고되기만 한 것은 아닌, 슬프지만 결코 슬프기만 한 것도 아닌, 삶의 모든 순간을 감싸고 있는 노애락의 순간에서 희를 찾아내는, 그리고 그것을 또 가볍고 산뜻하게 풀어낼 줄 아는 대인배의 면모를 풍기는 그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에세이는 결국 나의 이야기이고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느낀 것들을 풀어놓는 글, 특히 에세이라는 장르는 고난 속에서 희망과 의미를 찾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자칫 자기 연민에 빠지기가 쉽다.


강이슬 작가의 글이 대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슬프지 않은 에세이, 억지로 감동이나 교훈을 주려하지 않는 에세이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과 그녀의 글을 응원하며 그녀의 글 쓰는 자세를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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