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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n 25. 2020

취미는 독서와 클래식 음악 감상입니다만

변치 않는 것에 대한 존경과 애정

 취미가 뭐예요?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독서와 클래식 음악 감상입니다."라고 답을 한다면 어떨까? 곧바로 "아 그러시군요..."라는 대답과 함께 나의 첫인상은 재미없는 놈으로 굳어 버릴지도 모른다.


 비약이 심할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에 이런 놈이 있나?라는 생각을 상대방이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게다가 만약 소개팅 자리라면 그 사람을 다시 못 보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나의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해 수많은 볼거리를 추천해주고 스스로 운행이 가능한 자율주행 자동차의 대중화가 코앞에 다가와있는 이 시점에 이렇게 따분한 취미를 가졌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지루하고 옛스러운 사람인 거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소개팅 상대방은 오늘 저녁 넷플릭스에서 어제 보다만 미드를 이어볼 생각을 하며 내가 아닌 넷플릭스와 행복한 미래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빠르고 피상적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은 본인이 살고 있는 시대를 급변하는 시대라고 정의했으며 과거보다 앞으로 더욱 그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것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항상 앞 세대가 뒷 세대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진언일지도 모른다. 한데 2020년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 말은 더욱더 피부로 와 닿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자고 일어나면 상황이 변해있다. 국제 정세가 그러하고, 세계 경제가 그러하고, 내 통장의 주식 평가액이 그러하며 우리 집 집값이 그러하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성공 공식이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제의 진실이 오늘은 거짓이 되어버린다. 베스트셀러라는 것도 너무 자주 바뀌어서 더 이상 예전만큼의 위상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한 때 외설이냐 예술이냐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감각의 제국"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한데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루트와 방식이 너무도 정교하고 다양해져 이 정도의 영화 가지고는 더 이상 우리의 감각을 자극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고 만 것이다. 이런 초고속, 초감각의 시대에 시간과 노력이 수반되는 독서와 클래식 음악 감상을 취미로 삼는 사람이라니 많은 사람이 지루하다고 생각할 만도 하다. 도대체 즐길 것이 넘쳐나고 재미있는 것이 도처에 널려있는 이런 좋은 세상에 왜 굳이 시간과 머리를 굴려가며 책을 읽고 따분하고 지루해 마지않은 클래식 음악을 듣는단 말인가.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많은 것이 단순화되어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변함없이 자신의 존재감과 아름다움을 내뿜는 것들이 있다. 썩어도 준치이고 부자는 망해도 3대를 가며 김태희, 김희선, 전지현은 여전히 아름답다.


책과 클래식 음악이 나에겐 그런 존재다.


 미술, 영화, 오페라, 뮤지컬 등 문화적 영속성과 탁월성을 지닌 다른 문화유산들이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주로 즐기는 것에 대해서만 호감을 표하려 한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무례한 것도 없으니까. 책과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취미의 정의는 잘하는 것이 아닌, 좋아하여 즐겨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독서와 클래식 음악 감상이 좋다. 왜 독서이며 왜 하필 하고 많은 음악 중에 클래식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변치 않는 것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변화에 적응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만 같고 심지어 손가락질받게 되는 세상. 사람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고, 기술도 변하고 유행도 변하는, 어제의 정의가 오늘은 불의가 되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켜서 내가 알던 사실과 신념이 뿌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변치 않는 것들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돌과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었으며, 사람은 배신해도 돈은 배신하지 않아라는 영화 속 악당의 그 흔해빠진 대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감지하게 된 순간 나는 독서와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복잡한 세상, 앞으로 더욱 복잡해질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내 나름의 기준이자 도피처로 나는 이 두 가지를 선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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