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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Sep 15. 2020

어쩌다 마주친 그대

갑자기 품 안으로 들어오는 것들  

취업 후 노래방에 갈 일이 있으면
트로트를 부르곤 했다.


87년생으로 임창정, 휘성, 브라운 아이즈, 바이브의 노래를 즐겨 부르던 개인의 음악적 취향과는 상관없이 잘 알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회식의 연장으로 이어지는 노래방에만 가면 막내라는 이유, 흥을 돋워야 한다는 압박감, 사회생활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 내가 이만큼 잘 놀 줄 안다는 인정의 욕구 등이 복잡하게 뒤섞여 트로트를 부르며 저 복잡다단한 내면의 소리에 부응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상황에 맞추어 선택했던 것뿐이었기에 트로트는 나에게 그렇게 매력적인 놀잇감이 아니었다.


한데 어느 순간 트로트가 좋아졌다. 미스 트롯과 미스터 트롯이 연이어 히트를 치며 불러일으킨 트로트 열풍 때문은 아니었다. 애초에 유행에는 민감하지 못한 편이라, 두 프로그램 모두 시청해 본 적도 없을뿐더러 우승자를 제외하면 참가 인물에 대해서도 거의 알지 못한다. 그것은 그저 어느 날 갑자기 뜨거운 커피의 맛을 알게 되었다거나, 야채를 생으로 먹는 이유를 알게 되는 것처럼 갑작스러운 깨달음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원체 열이 많기도 하고 젊은 날의 대부분을 성급하게 살아왔던지라 그 철 모르던 열기를 식히고 싶어서였을까? 차가운 음식을 좋아했고 특히 음료에 있어서는 절대 뜨거운 음료를 마시는 일이 없었다. 본디 커피의 맛을 모르는 터라 커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카페가 21세기 사랑방이 된 이후, 음료를 고르는 일은 식사 메뉴를 고르는 것만큼 빈번하게 반복되는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커피의 맛을 모른다는 이유로 매번 음료를 마셔대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몸에 붙는 것은 살이요. 마음에 붙는 것은 다이어트라는 인생 과업이었다. 그래서 가끔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아메리카노에 눈길이 갈 때가 있다. 다른 이유 하나 없이 순전히 칼로리가 낮다는 유일한 이유만으로 선택하게 되는 그 음료를 마주하며 차라리 얼음물을 마시는 것이 백배는 낫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


한데 얼마 전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렇게 차가운 것만 주야장천 마셔대며 뜨거운 음료는 질색을 하던 내가 그리 춥지도 않던 어느 날, 아니 오히려 약간의 더위가 남아있던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의 어느 날에 뜨거운 커피 한잔을 주문한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의식적으로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기에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냥 그날은 왠지 뜨거운 커피를 주문하고 싶었더랬다.


그렇게 내가 기억하는 한, 거의 인생 최초인 것만 같은 뜨거운 커피와의 조우는 신선했다. 어린 시절 체끼가 있을 때면 명치 부근에 손을 얹어 무언가 얹혀있던 것을 따스하게 쓰다듬어주는 할머니의 손 같기도, 장염 같은 이유로 복통이 일어났을 때 배를 따스하게 만들어 주었던 찜질팩 같기도, 심한 독감이나 근육통으로 고생스러울 때 한방 맞으면 효과가 그만인 근육이완제 같기도 하면서 안락함과 평온한 늘어짐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아니 그보다는 신체 기능이 떨어져서였을까?라고 묻는 편이 좋겠다. 나이를 먹고 몸의 기능이 떨어질수록 따듯한 것이 속을 편하게 해 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는 보았지만 그것이 내 일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이렇게 인생은 매번 다음 단계가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환경에 침착하게 대처할 겨를도 없이 대부분의 순간에 떠밀리듯 놓여버리고 만다.


따듯한 커피가 갑자기 나의 인생에 들어왔듯 트로트 또한 그러했다. 사람들이 트로트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이유와 비슷한 이유로 나 역시 트로트가 좋아졌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모두 트로트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 말은 내가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을 거부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그저 어느 순간 갑자기 좋아졌을 뿐이다. 이유를 묻는다면 글쎄... 느린 것이 좋아졌다 정도가 떠오르는데 이 역시도 스스로를 납득시킬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생각해 보면 트로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훅 하고 내 마음속에 새로운 것이,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비집고 들어와서는 한자리 떡 하니 자리 잡고 앉아있을 때가 있다. 우리는 그러한 때에 마음을 내줬다고 표현한다. 마음을 내줬다는 것은 애정을 품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정을 한 번 품게 되면 그 이후에는 애정의 대상과 멀어지는 것이 힘들어진다.


이런 것은 예상할 겨를이 없다. 말 그대로 갑자기 훅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인생은 그런 면에서 재미있다. 예상치 못한 때에 마음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재미가 생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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