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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n 25. 2020

여유가 우리에게 주는 여유

선순환의 추구와 예찬

 부인은 호텔 조식을 좋아한다.  결혼한 후에야 호텔 조식을 처음 먹어보았다. 아니 호텔이라는 곳 조차 결혼하고 처음 가봤으니 조식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이런 환경적 차이로 인해 항상 여행을 갈 때마다 조식을 추가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사느냐 죽느냐만큼 거대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한 동안 여행을 다닐 때마다 의점을 찾아야 하는 우리 부부의 하나의 고질적인 문젯거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조식이 좋아졌다. 그 계기는 아이였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야 나의 시간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귀하고 소중하며 유용한 것인 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 조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사가 아니었다. 조식은 우리의 지친 영혼을 달래고 바쁜 삶 속에서 잠시 잠깐 쉬어갈 틈을 제공해주며 오롯이 내 안으로 침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드래곤볼에 나오는 정신과 시간의 방과도 같은 역할을 해주는 서비스였던 것이다.


호캉스가 유행인 것도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비싼 돈을 지불하며 그 어떤 외부 활동도 하지 않고 오직 호텔 안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들을 누리며 휴식을 취한다는 용어인 호캉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놀러 갔으면 마땅히 돌아다녀야 하고 숙소는 그저 이 한 몸 대충 뉘어 눈만 붙일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잠만 자던 용도로 지출하던 숙박비와 비교했을 때 두 배 세 배는 우습고 심지어 열 배 이상의 가격을 지불해가며 돌아다니지도 않고 호텔에만 짱 박혀 있다니 이 무슨 어리석은 행위냐며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가 된다. 우리가 호텔에 가는 이유는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알쓸신잡의 유홍준 교수는 말했다. 쉼과 여유를 위해 이렇게 큰돈을 지불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현시대의 유행이라고 한다면, 현대인들은 참으로 바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살아간다는 말이 사실이긴 한 것 같다. 


 호텔은 웰컴 티라고 하는 간단한 간식거리와 음료를 제공한다. 초보 호텔러일 때 나는 이것을 먹지 않고 놔뒀다가 퇴실할 때 가지고 나온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을 집으로 가져오는 순간 더 이상 웰컴 티는 나에게 여유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나는 웰컴 티를 집으로 가져오지 않는다. 그것은 거기에 있을 때에만 가치가 있으며 그곳에서만 나에게 여유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도구였던 것이다. 


 여유를 주는 것이라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커피.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말이 광고 카피로 이미 무수히 쓰이고 있었지만 나는 커피와 여유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대학 시절부터 커피를 입에 달고 살던 동기들에게도 도대체 커피를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나이가 좀 있던 형 누님들은 '나이 먹어봐 커피 없으면 하루를 못 버텨'라는 대답을 하곤 했는데 그래서 나는 커피를 자양강장제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해버리고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커피가 우리에게 주는 최대의 선물은 바로 여유였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여유를 마시는 것과 같다. 커피숍은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닌 여유를 파는 곳이었고, 술을 마시고 이차 삼차로 술집을 가지 않고 커피숍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만취를 통해 세상 시름을 잊기보다는 여유를 통해 내일의 의지를 다지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도한 의미부여일까? 여하튼 조식과 호캉스 커피 한 잔이 가치 있는 까닭은 우리 삶에 여유를 부여해주기 때문임이 확실하다.


여유는 정갈함에서 온다.


 조식을 먹을 때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접시와 음식들이 그렇고 빨래와 설거지에서 해방된 호캉스가 그렇다. 마구 어질러진 거실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과 단정하게 정리된 식탁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커피 한 잔이 다른 이유도 정갈함의 유무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정갈함에 바탕을 두고 있는 여유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여유가 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토록 여유로움에 갈증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일까?


 첫째. 여유는 해방감을 준다.

 까뮈는 인간의 본성은 자유를 추구하고 있으며 결코 수단이 될 수 없고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은 자유뿐이라고 말했다. 해방감은 곧 자유를 뜻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박탈당할  고통스러워한다. 범죄자들을 감옥에 가두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박탈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만큼 인간에게 자유로움은 큰 가치이며 평생 보장받아야 할 권리임에 틀림없다. 삶의 여러 뿌리들이 우리를 옭아매고 있을 때 여유는 우리에게 해방감을 선물해주기 때문에 소중하다.


둘째. 여유는 우리의 눈을 틔워준다.

 심봉사가 눈을 떴을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여유는 그동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들어오도록 만들어준다. 매일 다니던 길이 새롭게 보이고, 어제 만났던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던 취미 생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거나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 볼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여유는 이처럼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해주며 삶을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셋째. 여유는 선순환을 가져온다.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처럼 여유는 여유를 낳고 각박은 각박을 낳는다. 여유는 새롭게 도전하기 위한 휴식을 제공해주고 마음과 정신의 상처를 재생시켜준다. 이것은 우리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힘을 채워 넣어 준다. 여유를 억지로라도 우리 삶에 가져와야 그 여유가 여유를 낳아 우리 삶이 선순환 구조로 돌아갈 것이다.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사람만이 결국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에, 주체적인 삶, 만족하는 삶, 행복한 삶을 위해서 여유는 반드시 필요하다. 고로 여유를 주는 많은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시간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 잔인하게 복수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여유를 소중하게 여겨야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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