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은 쟁취가 아니라 향유에 있다

우리는 왜 사느냐는 근본적 물음

by 정 호
우리는 왜 사는가


이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버금갈 정도로 답을 내리기 어려우면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스스로 답을 찾아야만 하는 인생의 2대 난제임이 분명하다. 왜 사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답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행복해질까?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는 사람, 남보다 높은 지위에 올라서서 권위와 명예를 누려야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는 사람, 대기업에만 들어가면, 공무원만 되면, 결혼만 하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만 하면, 아이만 있으면, 아프지만 않으면, 로또에 당첨만 되면... 그렇게만 된다면 행복해질 거라는 수많은 실체 없는 목표들이 마치 실존하는 것처럼 우리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부유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행복들은 지속적이지 않다. 달성하고 나면 잠시 행복할 수는 있겠지만 이내 사라져 버리고 또 다른 새로운 목표와 갈증이 생긴다. "자~ 행복해졌으니 이제 뭘 하지? 또 다른 행복을 목표 삼아 뛰어볼까?" 이것은 행복에 대한 강박일 뿐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는 태도다. 행복해져야 한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무언가를 통해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은 필연적으로 어떤 쟁취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쟁취의 과정, 그 고되고 지난한 과정 끝에 얻게 되는 행복은 과연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인가.


에피쿠로스 학파에서 주장하는 아타락시아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절대적인 쾌락에 도달한 상태를 의미한다. 쾌락이라고 하니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의 1차원적 욕망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여기서의 쾌락은 육체적인 쾌락과 정신적인 쾌락을 모두 아우르는 어떤 궁극의 만족스러운 상태를 의미한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동적인 쾌락과 정적인 쾌락으로 구분 지었다. 동적인 쾌락은 무언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획득하는 즐거움을 의미하고 정적인 쾌락은 더 이상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상태의 즐거움을 의미한다. 동적인 쾌락은 쟁취의 과정을 통한 기쁨이며 정적인 쾌락은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의 상태, 해탈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동적인 쾌락보다는 정적인 쾌락에 도달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진정한 쾌락인 아타락시아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적인 쾌락의 상태에 우리는 도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수양만 한다고 해서 그런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다. 때로는 동적인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도 있고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쾌락의 끝에는 반드시 허무함이 따라오게 되어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어야 그다음 스탭을 준비할 수 있다.


왜 사냐는 질문에 다른 어떤 이는 무심하게도 "그저 태어났으니까 산다"라고 답하기도 한다. 이것이 무심하고 생각 없어 보이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 사람은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을 이미 체화하고 있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 살긴 왜 살아, 뭔 목적이 있어 그냥 사는 거지.
목적 없이 왔다가 그냥 가는 거라고!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야!

드라마 미생에는 현대인들의 공감을 받는 명대사가 많다. 그중 "인생이란 다가오는 문을 하나씩 열며 살아가는 거야"라는 문장이 기억난다. 순간에 집중해라, 지금에 충실해라, 멀리 보지 말고 지금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처럼 들렸다면 가슴에 품고 살아갈만한 인생 문장 중 하나로 꼽아도 좋을 테지만 나에겐 조금 다르게 들렸다.


그 문이 도대체 어디까지 있는 것인지, 어느 문까지 열어야 하는지, 어디서 멈출 수 있는지, 그 문을 꼭 열어야만 하는 것인지, 문이 꼭 하나씩 순차적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옆문은 없는지...


끝이 없다


목적지도 없이 끝없이 다가오는 문을 계속 열어가는 것이 인생인가. 끝이 보이지 않는 문만 계속해서 열기 위해 달려갈 것인가. 어느 문 즈음에 우리는 행복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인가. 문 옆에 예쁘게 피어있는 꽃도 좀 바라보고, 간질간질 스쳐 지나는 바람도 느끼며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쟁취보다는 향유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네가 도달해보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 돈으로 거의 모든 행복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힐지도 모른다. 패배자들의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며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며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행복은 내 안에 있다. 남에 말에 신경 쓸 시간도, 필요도 없다. 남들은 말하게 놔두고 나는 내 길을 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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