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취향이다

답이 없는 문제를 답이 있는 것처럼 대하지 말자

by 정 호
현대 사회는 행복에 중독되어 있다.


마치 행복이라는 것이 명확한 어떤 실체를 가진 것처럼 그려진다. 인간의 일생일대의 목표가 행복이고 그 행복을 향해 쉴 새 없이 달려가야만 하는 것처럼, 행복하지 않은 것은 죄악이고 행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것 같은 숨겨진 미지의 보물인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행복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한다면 과연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일까.


뻔한 말이지만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엄연히 다르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도 다르고 행복해지고자 노력하는 형태도 다르다.


때로는 행복하다고 믿었던 것에 다다랐을 때 공허함이 몰려오기도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자체로 즐겁지 못했기 때문에 도달하기만 하면 행복해질 거라 믿었던 대상은 환상처럼 사라져 버리고 또 다른 갈증만을 불러온다.


행복이라는 것을 도구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만이 진정으로 행복감을 줄 수 있다. 그저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그렇기에 얼마간의 고통스러움도 감내해 낼 수 있는 것, 이런 감정이 솟아오르게 만드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해지고자 노력하는, 아니 노력이라기보다 행함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것이 조금 더 적확한 표현이 될 것 같다. 한 사람은 필사의 노력을 다해야만 거머쥘 수 있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저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긴다면 그 둘은 행복에 다다르기 위해 같은 형태의 움직임을 보일까?


다른 사람들이 "쟤는 왜 저러지"라는 생각을 할 만큼 이해하기 까다롭고 공감하기 어려운 어떤 행위에 몰두하는 사람을 보고 불행하다고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이에게 여행은 일 년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행복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일지 모르지만 다른 이에겐 그저 귀찮고 피곤하여 수고로움을 동반하는 번거로운 일 정도로 치부될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는 커피 한 잔에서 여유를 느끼며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준다 한들 그다지 쓸모를 느끼지 못하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잠을 쪼개가며 미라클 모닝으로 알찬 하루를 보내는 것에서 뿌듯하고 뻐근한 행복감을 만끽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아침에 이불속에서 충분히 뒹굴며 느지막이 일어나 게으르게 늦장을 부리며 설렁설렁 차려먹는 아침 겸 점심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70억 인구가 있다면
70억 개의 행복이 존재한다.


언제 행복함을 느끼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것이다. 행복에는 정해진 모습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행복에 도달하는 과정 역시도 정해진 길이 없다.


헌데 종종 나의 행복은 정답이지만 타인의 행복을 오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미간을 찌푸리는 일이 생긴다. 그들은 왜 타인의 행복의 모양을 가만두지 못하고 자신의 행복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려 애를 쓰는 것일까.


자신이 느끼는 행복에서 충만함을 느끼는 만큼 다른 사람들 역시도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감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기 때문일까? 자신의 행복에 확신이 없어서 기어코 타인의 행복이 틀렸다고 낙인을 찍어야만 자신의 행복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다양한 모양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마도 그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좁디좁아 좁쌀 하나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얄팍한 식견으로, 삶과 인간 그리고 행복을 멋대로 재단하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쳐다볼 수 없을 지경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행복은 그동안 살아온 나의 인생에 바탕을 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취향의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행복을 부정하려는 타인의 말에 절대로 휘둘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평생 짬뽕만 먹어본 사람이 최고의 음식은 짬뽕이라며 강한 확신에 찬 모습으로 자신 있게 권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는 어찌 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맛을 모르고 평생을 살아왔다는 말일 테니.


행복은 결단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각자의 취향대로, 능력대로 그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충분히 향유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우리 서로 간섭하지 말고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의 행복에 흠뻑 빠져들도록 하자. 그리고는 그저 서로의 행복을 느긋하게 축복해 주자. 취향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니까. 행복이 취향의 문제라고 한다면 당연하고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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