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중요한 것은, 그걸 왜 하느냐는 것이다
세상은 무수한 방법론으로 가득 차 있다.
책 쓰는 방법, 시험에 합격하는 방법, 빠르게 돈을 버는 방법, 온라인 쇼핑몰에서 월 천만 원을 버는 방법, 마음을 비우는 방법,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 학생들을 다루는 방법, 수업을 잘하는 방법, 스마트폰에 중독되지 않는 방법...
방법론들은 먼저 어떤 지위에 도달한 사람들에 의해 그 지위에 도달하고픈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된다. 먼저 어떤 정보를 선점했다는 것은 후발주자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나 명예와 같은 어떠한 형태의 권력으로 반드시 치환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모두에게 전파되지 않은 방법론은 반드시 돈이 되기 때문에 때로는 어떤 위치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조차 방법론을 팔아 돈을 벌어들이기도 한다.
어떤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수요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공인된 자격을 갖추었거나, 수요자들이 인정할만한 실력을 갖추었거나. 그 둘이 모두 충족되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정보제공자로서의 자격과 권위를 획득하게 된다.
방법론은
어떤 일을 성취함에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분야가 되었건 저경력일 때에는 방법론을 숙지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교사가 교과 지식을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도, 의사가 수술을 잘하기 위해 수많은 실습의 과정을 거치는 것도, 작가가 글을 잘 쓰기 위해 수사법을 익히고 글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도, 요리사가 음식의 맛을 극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처음에는 재료 손질부터 배우는 것도 모두 어떤 수준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을 익히는 것이고 이는 성취에 보다 빨리, 그리고 정확히 도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방법론 자체에 매몰되고 만다.
중요한 것은 그 무수한 방법론들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고 나에게 필요한 방법론을 구분하여 취하는 태도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태도는 내가 도대체 이 짓을 왜 하고 있는지 스스로 확실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교실에서 학생 생활지도를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교실 안에서는 매일 작은 전쟁이 일어난다. 학생들끼리 시기와 질투, 오해, 파벌, 권력 투쟁, 학업 경쟁, 분노 등 인간 세상에서 발생하는 거의 대부분의 문제가 고스란히 발생한다. 때로는 학생과 교사 사이에서도 비슷한 문제들이 폭발한다. 이런 문제를 중재, 혹은 해결하기 위해 교사는 크게 두 가지 제스처 가운데 하나를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권위와 위계를 활용하여 학생으로 하여금 정의의 논리를 받아들이게 하거나 포용과 자애를 활용하여 타협과 어름의 방식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권위로 굴복시키거나 따스함으로 녹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두 가지 방법 사이를 적당히 왔다 갔다 하는 것이겠지만 어떤 방법론을 활용할 것인가 하는 일은 보통 개인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권위를 활용하여 갈등을 해결하는 교사는 스스로가 너무 강압적이었는지 고민하게 되고, 따듯함이 몸에 배어있는 교사는 권위가 너무 없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힘들어한다. 이때 교사는 스스로 활용해왔던 방법론 이외의 방법론을 취해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어떤 방법론을 취하던 방법론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답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위가 되었건 자애가 되었건 학생을 올바른 길로 지도하기 위해서였다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적절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길로 안내"라는 목적을 상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어떤 방법이 옳은 방법인지 고민하는 것은 쓸데없이 힘만 빼놓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수많은 자기 계발의 방법론이 존재한다. 자기 계발은 궁극적으로 무언가에 도달하고픈 욕망의 그림자이며 그 욕망은 보통 성취나 평화, 행복과 같은 가치에 방점을 둔다. 이런 자기 계발은 결국,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으며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에 대해 저마다의 답을 내어놓았다. 금욕을 하여 정신을 맑게 해야 한다. 성취를 통해 갈증을 해갈해야 한다. 허무와 자기혐오에 직면하며 동력을 회복해야 한다. 해탈을 통해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본능에 충실해져라. 이상은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다.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봐서야 쓰겠나
문제는 어떤 방법론이 맞냐 틀리냐는 것이 아니라 평온이나 행복이라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활용되는 방법 자체(금욕, 성취, 자기혐오, 해탈, 본능, 이상)에 빠져드는 것이다.
평온과 행복을 얻고자 금욕을 하려 하는데 금욕이라는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려 금욕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며 쓸데없는 괴로움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성취를 하려 했는데 성취를 못해 불행해지고,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도의 자기혐오에 도달해보려 하다가 자기혐오에 도달하지 못한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고, 해탈을 통해 집착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는데 해탈에 그 어느 때보다 집착하게 되는 식이다.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평온이라면 평온에 도달하기 위한, 성취라면 성취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활용하면 된다. 방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방법은 수단일 뿐 결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뤄내고 싶은 목적을 위해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방법론에 빠지게 되면 방법이 목적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것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고통을 짊어지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