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핀 밥을 먹었다

조급함은 우리의 눈을 가린다

by 정 호

아내가 처갓집에서 저녁을 먹고 온다고 한다. 요리를 좋아해 혼자서도 그럴듯하게 식사를 잘 차려먹는 편이지만 그날은 왠지 온 집안에 라면 냄새를 풀풀 풍겨대고 싶었다.


정량보다 약간 적은 물을 냄비에 붓고 떡과 만두를 손에 잡히는 대로 툭툭 집어던진다. 라면과 수프를 동시에 때려 넣고 감칠맛과 깊은 국물 맛을 내도록 도와줄 다진 마늘 한 스푼을 얹은 다음 대파의 하얀 부분을 송송 썰어 마늘과 함께 얹어 뚜껑을 덮고 센 불로 강력하게 잠시 동안 끓여내면 열 시간 동안 돼지뼈를 우려 육수를 뽑아내는 라멘 전문점의 라멘이 조금도 부럽지 않게 깊은 풍미를 자아내는 나만의 라면이 완성된다.


그렇게 대략 5분의 조리 과정이 끝난 후 영접하게 되는 라면은 냄새부터 심상치가 않다. 만두의 고기에서 뽑아낸 육수, 떡에서 새어 나오는 걸쭉함, 마늘과 파가 자아내는 깊고 시원한 향과 맛은 라면이 가진 기본의 풍미를 한껏 끌어올려 라면 이상의 새로운 요리로 재탄생시킨다. 거기에 풀어지지 않은 상태로 완벽하게 익혀진 계란 한알까지 첨가되어 있다면 밥을 한 숟가락 말아먹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는 마성의 음식이 되어버린다.


이런 음식을 눈 앞에 두고 어찌 고상하게 한 젓가락씩 음미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면 나는 정신없이 라면을 마셔대고야 만다. 주변에 아무도 없이 혼자서 음식을 마주하는 날이면 식사 시간은 더욱 극단적인 양상을 띄곤 한다. 혼자서 음식을 마주하는 그 순간의 평온함이 너무도 소중하여 오롯이 그 고요의 평화에 빠져들고 싶어, 평소와 달리 이리저리 혀를 굴려가며 한 점 한 점 음미하며 맛과 깊이 마주하기 위해 애쓰는 날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날에는 고상함이나 우아함과는 거리를 둔다. 흡사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영화에 나오는 좀비나 흡혈귀가 게걸스레 인간의 피와 살을 탐하듯 나는 라면을 탐하곤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라면을 먹어치우는 와중에도 황홀한 마침표를 기어코 찍기 위해 나의 두 눈은 콘센트를 뽑아둔 밥통으로 시선을 던진다. 콘센트를 뽑아둔 것이 어제였는지 오늘 아침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런 것을 고민할 틈을 주는 즉시 맛을 향한 욕망은 죄책감이라는 놈에게 패배할 것이 두려웠는지 서둘러 밥솥으로 나의 두 다리를 움직이도록 명령한다. 이드에게 굴복하고 마는 에고를 바라보았다면 프로이트 형님은 나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내가 먹은 밥에 곰팡이가 피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두어 시간이 지나 설거지를 시작할 때쯤이었다.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셨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목구멍이 근질근질한 것 같기도 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마련이라는 옛 성현의 말씀을 다시 한번 몸소 체험하는 중이었다.


나훈아가 테스 형에게 답을 구했듯 나 역시 프로이트 형에게 답을 물어보고 싶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조급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나는 왜 원초아(이드=본능, 욕망)를 이겨내지 못했을까. 무엇이 나의 욕망을 그토록 강력하게 작동하도록 설계하였던 것일까.


무심함이었을까 조급함이었을까, 둘 다 아니라면 어떤 이유로 나는 곰팡이 핀 밥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일까.

나의 눈을 가리는 것들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그저 태생적으로 주변 상황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무심한 기질 탓이었을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밥에 핀 곰팡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걸 이유라고 하기엔 조금 도가 지나쳤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조급했을까?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을까?

빨리 먹지 않으면 면이 뿔고 국물 맛이 떨어질까 싶었을까? 아무리 내가 끓인 라면이 맛있다고 한들, 먹기 힘든 음식도 가격이 많이 나가는 음식도 아닌 고작 라면 한 그릇에 그 정도로 정신이 팔렸다고 하기엔 스스로 자존심이 상해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육아로 인해 나를 위한 시간이 사라진 요즘, 아마도 아주 가끔 찾아오는 자유의 시간을 어떻게든 꽉꽉 채워서 보내고 싶었던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나에게 허락된 이 짧은 자유를 어떻게든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 빨리 밥을 먹어치우고 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나로 하여금 밥통을 자세히 살펴볼 여유를 앗아가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조급함과 둔함, 절제력의 상실은 우리로부터 주변을 살펴볼 수 있는 여유를 앗아가 버린다. 우리는 조급함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고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며 위험에 빠지게 되는가. 조급함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고려하지 못하게 만든다.


보이스 피싱을 비롯한 각종 사기 수법들은 사람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성적 판단을 어렵게 만들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행위는 목표물을 조급하게 만들어 시야를 좁히는 일이다.


이것은 비단 사기와 같은 불법적인 영역에만 적용되는 현상이 아니다. 어떤 판단을 해야 하고 그 판단의 결과로 많은 것이 결정되는 순간에 우리는 전략적으로 상대방을 조급하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는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곤 한다. 이것은 본능적으로 조급함이 우리의 의사결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라면에 밥을 말기 전에 심호흡을 세 번 정도 하고 움직이는 습관을 들일 수 있을까? 흥분하지 말고 항상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분명 의미 있는 행위이긴 하지만 평생을 노력해도 도달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원효대사도 침착함을 유지했다면 해골물을 안 마셨을 테니까.


그렇다면 노력하고, 저지르고, 배우는 과정의 반복이 인생인 것도 같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 무한한 부딪힘의 과정 속에서 배움과 성장을 일으키는 , 도달할 수 없음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단련하는 과정을 선택하겠다는 우직한 마음. 그런 마음가짐만이 허탈함에서 벗어나,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보호해주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