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국수에서 투자의 본질을 보다
내가 비빔국수를 만들다 깨달았어, 국수 양에 비해 너무 큰 양푼에 비비니까 소스랑 버려지는 양념이 많이 묻잖아 그래서 소스가 더 필요해지니까 아까운 거야.. 그래서 작은 그릇에 비벼봤지 소스 좀 덜 묻게 하려고... 그랬더니 많은 양을 비비질 못하네 또!! 다 막 흘러넘치고~~ 아 소스가 많이 묻고 버려지더라도 더 많이 비비면 그게 더 이익이구나! 깨달았어 ㅎㅎㅎ
주식투자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생이 모든 것을 투자자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모양이다. 내가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듯 동생은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다가 규모의 경제와 종잣돈의 중요성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서로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인생에 있어 가장 즐거운 경험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만나는 소개팅 자리에서도 공통의 관심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같은 주제에 관심을 품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급속도로 가깝게 만들어주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요즘 뉴스를 보면 2030 세대가 투자에 눈이 멀어 그것이 마치 거대한 잠재적 위험인 것처럼 다루는 뉴스를 쉽게 접할 수 있다. 2030 세대가 이전에 비해 투자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 사회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실제 주변을 보면 주식이건 비트코인이건 부동산이건 어떠한 종류의 재테크가 되었건, 하나 이상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실행하고 있는 지인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것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주변 20~30대의 70퍼센트 이상은 재테크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학창 시절 IMF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30대 이쪽저쪽의 나이에 속한 대한민국 청년들은, 어린 시절 적금이 최고이며 주식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말과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고 할지라도 보증은 절대로 서면 안된다는 말을 아마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
투자의 위험성과 국가 수준의 경제적 파탄을 몸소 경험한 부모 아래에서 자라온 2030 세대는 투자의 위험성을 직접 경험해보기도 전에 이미 미신과도 같은 수준으로 세뇌되어 실체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투자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희망적인 미래를 그려볼 수 없는 처절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투자의 세계를 흔히 제로썸 게임에 비유하곤 한다. 버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잃는 사람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세상 모든 말들이 완벽히 반대편에 위치하는 말에 의해 언제든 반박될 수 있듯 투자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말들이 넘쳐난다.
이러니 저러니 하더라도 투자의 세계는 결국 살아남는 사람의 말에 권위를 실어준다. 틀린 말도 워렌버핏의 입을 통해 나오면 진실이 되고, 맞는 말도 투자에 실패한 사람이 하면 쓸모없는 헛소리가 되어버린다.
한낱 꿈일지라도 그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잘 먹고 잘살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비롯해 잘 먹고 잘살고 싶은 사람들의 그 간절하고 애틋한 바람이 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요즘 화두다. 얼마큼의 돈이 있어야 경제적으로 자유로움을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스스로 안정감을 느낄 정도의 일정량의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어떤 업에 종사하고 있건 경제적 자유가 뒷받침되어야 본업에서 자유를 느끼며 최대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자꾸만 돈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자유로울 때보다 허튼곳에 힘을 쏟을 확률이 높아진다. 혹은 애초에 돈은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없으니 명예나 권력, 유명세 등 다른 것을 이용하여 채우지 못한 욕망을 채우려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신을 믿으라 그리하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두려움이 없어질 것이요 마음에 평화가 오고 그것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이 문장에서 신을 돈으로 바꾸어 읽어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는 것을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곧 신의 역할을 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은 왠지 모르게 부정하고 싶지만 딱히 부정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결국 모든 것은 인정의 욕구에서 비롯된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경제적 자유에 도달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자유로울 때 교사는 참 교사가, 의사는 명의가, 예술가는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게, 법관은 진정한 정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시간이 흘러, 지나간 세월을 웃으며 도닥일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국수를 먹으면서도 투자의 세상과 관련성을 찾아내고야 마는 그 간절함들이 결국에는 개인의 만족을 가져오는 어떠한 경지에 데려다 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며, 여러 다른 노력들과 함께 어우러져 그제서야 진정으로 자신의 업에 완벽한 몰입이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