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같은 순간
가끔 음악을 듣다가 한 음 한 음의 소리가 너무도 선명히 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피부에 와닿는 경험을 한다. 우주에 마치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처럼 일체 다른 것들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상태가 되어 음악의 세계로 깊숙하게 빠져들어갈 때가 있다.
완벽한 몰입의 상태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럴 때면 오디오를 취미로 가진 사람들의 마음이 백번 이해가 되면서 좋은 오디오를 구입해볼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런 감정 상태에 흠뻑 취해있다가 문득 이런 황홀경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듣고 있던 음악을 소개할 때가 있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들은 지금 몰입의 시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과 내가 동시에 같은 것에 몰입되어 있을 때 찬란한 환희에 대한 완벽한 합치가 일어난다. 나 혼자 좋아 죽는 것을 남들이 봤을 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책이라고 해서 모두가 감동받는 것은 아니고 같은 책을 놓고도 어느 나이에, 어느 시기에 읽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은 천차만별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세상에 객관적인 것이 정말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모든 것에 주관이 작용하고 온 세상은 각자의 주관으로 가득 채워진 상태로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정치인들의 토론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는 같은 단어를 놓고도 다른 개념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어나 개념을 두고도 서로 다른 정의를 내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정치라는 것은 결코 화합을 이룰 수 없는 파워게임이라는 것을 매번 느낀다.
친구들과 술을 한 잔 기울이다 보면 아주 가끔 감정이 과잉되는 날이 있다. 이성이 서서히 마비가 되어가며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순간, 모두가 함께 비슷한 속도로 감성에 취하는 날이면 이렇게 행복하고 황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환희에 가득 찬 하루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특정인만 홀로 과잉 감정에 빠지게 되는 날이면 그 사람은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어버리고 만다. 서로의 타이밍이 맞지 않은 탓이다.
타이밍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한 때는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후회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겁한 변명을 돕는 말이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인생은 정말 타이밍이 맞다.
서로가 서로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을 때 사랑은 비로소 시작될 수 있고, 사람들의 생각이 동시에 크게 바뀌는 어느 시점이 왔을 때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타이밍이라는 것은 개인의 삶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이기도 하지만 조직, 단체, 국가,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될 수 있는 거대한 담론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타이밍이라는 놈을 시기적절한 때에 잘 마주하기만 한다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리면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겠지만, 때때로 타이밍이 어긋나기에 벌어지는 수많은 비극들이 우리를 슬프고 힘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