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역할

대중화 : 널리 이롭게 하라

by 정 호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 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기생충에 대해 평론한 문장이다. 이 문장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비판했는데 그 까닭은 과도하게 어려운 문장을 사용하여 멋을 부렸다는 이유에서이다.


이동진 평론가의 이 평론은 지식인들의 현학적 태도를 대표하는 모습이라며 대중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평론 이후에 "명징"과 "직조"라는 단어를 문화예술계를 비롯해 각종 대중서적이나 칼럼, 서평 등은 물론이거니와 온갖 커뮤니티 글에서까지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동진 평론가가 명징과 직조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전에, 이 두 단어를 그간 살아오면서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본 적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야말로 두 단어를 세상에 새롭게 선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이슈 몰이를 하며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신선한 사건으로 기억한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단어 자체가 워낙 사용빈도가 낮은, 희귀하고 예외적인 단어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동진 평론가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영향력과, 평론의 대상에 오른 기생충이라는 영화 역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라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대중의 관심을 흡수할만한 여러 요건들이 종합적으로 잘 섞여서 발생한 흥미로운 에피소드였다고 볼 수 있다.


한 문장의 짧은 글이 이처럼 많은 관심을 끌어모으게 된 데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한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유명인의 영향력에 포커스를 맞춰볼까 한다.


처음엔 "굳이 이렇게 어려운 단어로 지적 허영을 채웠어야 했는가"라는 비판으로 시작된 평론가의 평에 대한 평론은 점차 대중의 의식 속으로 전파되며 밈에 가까운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두 단어는 이전에 비해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획득하였고 그것은 곧 그 단어들이 더 이상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게 되었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것이
엘리트 혹은 리더의 역할은 아닐까


리더와 엘리트는 분명 탁월한 존재들이다. 뛰어난 능력과 그에 따라 자연스레 딸려오는 화려한 커리어는 엘리트들로 하여금 부지불식간에 선민의식을 갖게 만든다. 굳이 잘난 사람을 탓하며 욕할 필요는 없다. 멀리 볼 것 없이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도 같은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조그마한 성취를 이루거나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점을 스스로 발견해 낼 때 우리는 쉽게 자만심에 빠지게 된다.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신을 잃어버리는지 이해한다면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순식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쉽게 자만에 빠지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드러내는 표상과도 같다. 인간은 쉽게 선하지 않은 길의 유혹에 빠진다. 그런 나약한 인간성은 엘리트라는 한 겹의 가면을 쓰면 더욱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트이기 때문에 기대되는 지점이 있다. 엘리트를 칭하는 여러 단어 중 리더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그 기대감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다.


리더는 앞서서 이끄는 사람을 뜻한다. 리더의 역할에는 무엇이 있을까? 카리스마를 가지고 남들은 보지 못하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 부드러운 포용력으로 능력 있는 인재들을 서포트하고 그들이 맘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자리를 깔아주는 것 등 리더로서 기대되는 여러 양태가 존재할 테지만 나는 리더의 역할로 낯선 것을 끄집어내는 능력을 말하려 한다.


리더는, 엘리트는
낯선 것을 끄집어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오피니언 리더라는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강력한 권위가 부여되어 세상일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들은 환경보호나 전쟁 종식과 같은 주제에 대하여 선한 영향력을 행하고자 목소리를 낼 수도 있고, 반대로 세력의 얼굴 마담이 되거나 선한 얼굴 뒤에 숨어 본인과 소속 단체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악한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건 개인의 자유이겠지만 진정 리더의 자리에 올라선 사람, 올라서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 그중에서도 선한 의도를 가지고 선한 결과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건드려줘야 한다. 이동진 평론가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가 만들어낸 저 일련의 사건을 바라보며 어떤 하나의 생각이 대중에게 퍼져나가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대중서적, 대중음악, 대중문화라는 단어들이 있다. 이는 무슨 뜻일까? 일반 대중들이 접하여 즐길 수 있는 책이나 음악, 각종 문화체험 앞에 대중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이는 고급지거나 일부 엘리트 계층만 누릴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향유할 수 있는 수준의 문화적 자산을 의미한다. 한데 때때로 이것은 낮은 수준의, 지식이 얕고 가벼운 것만 좇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 마치 대중이라는 단어가 서브 컬처의 한 종류인 것처럼 묘사될 때가 있다.


하지만 대중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나만 잘났네~라는 식의 현학적 태도는 결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은 진짜 리더가 되기 어렵다. 언제나 패러다임의 변화는 대중과 함께할 때 가능했고 대중의 선택을 받은 사람만이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트는 반드시 대중 연사가 되어야 하며 대중적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움직여야 한다. 적절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적절한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를 소개하며 기존에 잘 사용되지 않던 단어를 대중화시킨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놀라웠다. 그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리더의 역할 가운데 하나의 상징적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던 신선한 에피소드였다. 기생충 주인공 기우의 말처럼 진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