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흘러갑니다

정중동, 그 고요한 변화

by 정 호
구름이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파란 하늘 아래 뭉게뭉게 피어오른 하얀 구름이 그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빠른 속도로 스륵스륵 밀려나가며 움직일 때가 있다. 저 정도 규모를 가진 자연의 움직임이라면 벼락이 칠 때처럼 요란한 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둥개둥개라던지 동실동실같이 적당히 말랑말랑한 소리가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련만,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기묘한 느낌과 마주할 때가 많다.


거대한 움직임이 분명히 나의 두 눈에 포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오감으로는 어떠한 느낌도 전혀 포착할 수 없다고나 할까. 소리도 냄새도 만들어내지 않는 정중동의 무감각함 안에서 오직 시각적으로만 포착이 가능한 이 자연현상은,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움직이고 있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넘실대는 강물을 마주하고 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바다는 매 순간 자신의 변화무쌍함을 세상에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하지만 강은 어떠한가.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고요히 넘실대며 조용히 자신의 길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구름을 마주할 때와 비슷한 감정의 기시감과 마주한다.


사실 구름도 강물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고요할 뿐 그 내면에서는 순간순간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물리, 화학적 작용들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을 텐가. 고요하고 조용해 보이는 강물이지만, 바다에 빠져 죽는 사람보다 강에 빠져 죽는 사람이 뉴스에 더 자주 나오는 것으로 보아 강이 품고 있는 혼란과 공포는 바다가 품고 있는 두려움보다 어쩌면 더 깊고 파괴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하게 만든다.


내면은 급변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결코 그 순간을 알아채지 못한다. 급변함은 성숙함이나 철이 드는 것과 같이 어떤 무르익음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냉소나 포기와 같이 차갑게 식어버린 열정의 소멸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서서히 하지만 묵직하게 변화하며 움직이는 이 내적인 변화는 흐르는 구름과 강물처럼 결코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구름이 움직인다는 것을, 강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그것은 다만 관심이 필요한 일이다.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서는 여유와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바쁘게만 살다 보면 구름이 움직이고 있는지, 강물이 흘러가고 있는지 따위에 관심을 둘 체력도 마음도 쉽게 흐드러져 사라져 버린다.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것들, 그러한 것들에 우리는 틈틈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을 넘어뜨리는 것은 커다랑 구덩이가 아니라 발에 묻은 작을 흙일 때가 더 많다는 공자의 말처럼, 작고 미세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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