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쯤 올 때가 됐는데

이제는 지칠 때도 됐는데

by 정 호

이번 여름은 더위도 장마도 늦다. 지금쯤이면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됐어야 할 시기인데 와야 할 비도, 더위도 근황을 알리지 않으니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주기를 갖고 반복되는 것은 그것이 비록 반갑지 않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은연중에 지금쯤 올 때가 됐는데 왜 나타나지 않지?라는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폭력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이 나중에는 예상하고 있던 폭력이 발생되어야 도리어 마음이 편해지고 늘 잔소리와 꼰대 짓을 하던 상사가 갑자기 친절한 미소로 말을 걸면 도리어 소스라치게 놀라듯, 부정적인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반복적으로 그런 것들과 마주하게 되면 어느 순간 루틴이 되어 부지불식간에 내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유를 갈망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때로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게 더 편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이유는, 자유를 발휘할 때 딸려오는 책임감이 두려워서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너무 오랫동안 자유도를 발휘하지 못한 채 살아왔기 때문에 자유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아온 삶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헤어진 연인과 이삼일의 냉전시기를 갖는 것이 보통의 루틴이 되어버린 연인에게 일주일이 지나도록 상대방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은 이상 신호임이 분명하다. 기존의 방식과 루틴에서 벗어난 무언가 균열이 발생했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서둘러 균열의 원인을 찾아 처방을 하지 않는 이상, 균열은 그 작디 작은 틈으로 결국 커다란 붕괴를 뱉어내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도서관에서 공익근무를 하던 시절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내 시선이 닿는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던 학생이 있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서너 번은 같은 자리에 앉아 공부하는 학생을 바라보며 대체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책을 정리하러 가는 척하며 슬쩍 자리에 놓여있던 책들을 곁눈질로 훔쳐봤던 기억이 난다. 나와 비슷한 계열에 해당하는 공무원 교재를 펼쳐놓고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나중에 어디에선가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느 날부터 도서관에 나타나지 않는 그 학생이 떠올랐던 때는 학생이 항상 앉아있던 자리가 꽤 오랫동안 빈자리로 남아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 학생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부디 합격해서 더 이상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응원을 보냈다.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나타나지 않는 것들은 묘한 불안감을 자아낸다. 인간은 본디 반복적이면서 예측이 가능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루틴을 벗어나는 균열은 신선함을 추구할 때에는 분명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좋은 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예상했던 것을 벗어나 어떠한 손실이 다가올 것처럼 느껴질 때에는 불안과 두려운 마음을 슬쩍 끄집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불안감의 거의 대부분은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그저 막연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것에 대한 의구심과 묘한 불안감은 말 그대로 예상치 못한 것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상치 못한다는 것은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며,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그것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인간의 불안은 언제나 "미지"의 것에서 태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그저, 그 일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엔 없다. 기다렸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별수 없는 것이고, 기어코 예상치 못해 불안에 떨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면 그때의 우리의 머리와 심장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방법을 강구할 테니 말이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는 말을 보고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던 기억이 난다. "어? 왜 이러지 예상과 다른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자. 예상하지 말자, 변수에 자연스러워지자.

지금 쯤 올 때도 됐다는 생각, 이제는 지칠 때도 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