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한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기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될 때 우리의 무의식 저편에는 트라우마라는 끊어내기 힘든 족쇄가 하나 채워진다. 그 족쇄는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는 순간이면 팽팽하게 당기어져 족쇄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우리를 초조하고도 예민한 긴장의 상태로 잡아 붙들어둔다.
개에게 물린 적이 있다. 대학시절 좁은 골목의 안쪽 끝에 위치한 집에 잠시 살았던 때가 있었다. 풍수지리적으로 골목 끝에 위치한 집은 좋지 않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나기도 하지만, 복제인간도 곧 만들어 낼 것만 같은 첨단의 21세기에 이게 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은 마음에 그런 것은 별로 고려하지 않고 집을 선택했던 것 같다. 더욱이 당시에는 그런 것을 고려하여 집을 선택할만한 여유라는 것이 없었다.
우리 집 바로 옆집은 덩치 좋은 성인 남성만 한 크기의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문제는 집주인이 가끔 개의 목줄을 풀어둔다는 것이었다. 목줄이 풀린 개는 가끔 대문을 열고 골목길로 나와 골목을 지나다니는 행인들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성을 감추지 않았다.
"아~ 거 개 좀 묶어둡시다 집을 못 들어가겠네~"
집에 누워있다 보면 이런 외침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외침이 불행하게도 나의 입에서 나오는 상황이 종종 만들어져 나를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어느 술에 취한 날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따~ 아저씨 개 좀 묶어두지요. 지나다닐 수가 없네"라는 외침에 주인집 아저씨가 설렁설렁 걸어 나오며 "아 우리 집 개는 사람 안 문다니까 그러네"라는 믿을 수 없는 말을 던지며 개를 끌고 들어갔을 테지만, 그날은 무슨 객기였는지 나와 마주 선 그 덩치 큰 개 xx와 대결을 벌이려는 장수라도 된 듯한 심정으로 한참 동안 마주 선 채, 그놈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집주인의 "아 우리 집 개는 사람 안 문다니까"라는 말을 믿기라도 했던 것인지, 아니면 까짓것 그냥 한 번 물려서 깽값이라도 벌어보겠다는 심정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성큼성큼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도 술기운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 가장 정확한 이유였을 테다. 다 그놈에 술이 문제다.
결국 물려버리고 말았다. 으르렁대고 있는 자신의 옆을 유유히 지나가는 작은 덩치의 행인에게 자존심이 상했던지, 그 개 xx는 결국 내 뒤꿈치를 물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술에 취해 고통을 느끼지 못했는지 배운 적도 없는 뒤차기로 그 개님을 한방 걷어차 준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정신이 들자 뒤꿈치가 아파왔고 선명히 남아있는 이빨 자국에 어제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파상풍이 무서워 병원에 가서 즉시 파상풍 주사를 한 방 맞았고 개 주인에게 가서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경찰이 조사를 나왔지만 주의를 주는 것 말고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생각보다 우리나라의 민사사건이 두루뭉술하게 해결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법보다 주먹이 빠르다는 말에 일정 부분 수긍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나가며 잊히는 사건인 줄 알았던 그날의 에피소드는, 이후 커다란 개를 만날 때마다 내 발을 멈추게 만드는 트라우마가 되어 내 삶 속에 작은 흔적을 남겼다.
한 번은 무단횡단 때문에 사귀고 있던 여자 친구와 헤어졌던 적도 있다. 자동차의 신호 위반으로 교통사고를 당해 1년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었다.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아무리 내가 신호를 지키고 조심하더라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큰 차선의 신호등 앞에만 서면 심호흡을 하게 만들었다. 나의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호에 걸려 차가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로변에서 무단횡단을 종용하는 여자 친구에게 너무도 큰 실망감과 무배려함을 느낀 나머지 그대로 뒤로 돌아서며 이별을 고한 적이 있다.
그 외에도 집에 빨간딱지가 붙어 빚쟁이들이 밤낮없이 집 문을 두드리던 일을 겪고 난 뒤 빨간딱지라는 단어만 들어도 극도의 거부감이 든다거나, 두 번의 도둑을 경험한 뒤에 잠들기 전 현관 걸쇠를 꼭 걸어두고 자는 습관 같은 것들 역시 트라우마가 내게 남긴 작은 흔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 이런 사건들이 단발성 이벤트로 스쳐 지나가지 못하고 내 삶 어느 한 구석에 들러붙어 꽁꽁 숨어있다가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며 나를 놀라게 할 때가 있다. 그것을 우리는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트라우마는 경계심을 예민하게 단련시켜 앞으로 닥칠 위기 상황을 피해 갈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나름의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상당한 정신력의 소모와 감정적 피로감을 동반하기 때문에 완전히 긍정적인 방어기제라고 하기엔 어려운 점이 분명 존재한다.
경계심은 살려두되 소모감을 줄이는 것. 그것이 트라우마에 대한 올바른 대처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때로는 정면으로 직면하여 그것을 이겨내려 노력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너무도 힘든 탓에 마주치지 않으려 회피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이도 저도 힘들 때에는 다른 것으로 덮으면 덮어질까, 숨으면 숨을 수 있을까 싶은 필사적인 마음으로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상처를 진심으로 어루만져주는 관계를 타인과 맺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깊은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거니와, 설령 그런 사람을 찾았다고 한들 그 사람을 내 곁에 두길 바라는 일은 어디까지나 나의 바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가끔 그런 행운이 찾아온다면 기적을 마주한 것과 같은 마음으로 기쁘게 환대하면 될 일이지만, 본질적이자 최우선적으로 나를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되어야만 한다. 스스로 이겨내고 스스로 단단해지는 일.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일 뿐 아니라 어쩌면 모든 일에 통용되는 만능열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