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3년의 실경력이 채워지면 1정 연수라는 연수를 받는다. 약 한 달 간의 집합연수를 통해 당시 가장 핫한 교사 강사들을 만날 수 있고, 교사 이외의 다양한 분야의 강사들을 접하면서 교사로서 필요한 다방면의 지식을 배우고 익히며 교사로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해 조금은 본격적으로고민에 빠지게 된다.
김태현 선생님은 내가 1정 연수를 받을 당시 핫한 강사 중 한 명이었다. 당시의 강의 주제도 "교사 치유"에 초점을 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훤칠한 키에 쩌렁쩌렁한 목소리, 그의 호방한 기상은 연수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그가 건네는 위로의 말은 경력이 짧은 교사들의 마음에도 충분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0년 EBS에서방영된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방영 당시 TV를 통해 시청한 것은 아니고, 교사가 된 후 초임 시절 우연한 기회에 교사들이 스스로 변화하고 싶어 공개 컨설팅을 요청하고 그 과정을 방송을 통해 송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방영한 지 한참 지난 후에서야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그 프로그램에서 컨설턴트 중 한 명으로 김태현 선생님이 출현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EBS에서 주최하는 프로젝트 프로그램에 컨설턴트로 출연할 정도라면1정 연수에서 수업 기술적으로도 분명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으리라 짐작한다.
연수에서 고작 세 시간 동안 그를 마주한 것이 그와 대면한 전부의 시간이었지만 그의 강의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그는 수업 기술이나 노하우, 자신이 그간 일구어 낸 업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미숙했던 부분, 학생들과 갈등이 폭발했던 순간, 교사로서 드러내기 부끄러울 수 있는 본인의 창피한 과거를 드러냄으로써 연수생의 마음에 다가서려 했던 것으로 보였다.
수많은 수업 기술과 이론들, 유명한 강사들의 화려한 업적과 성공담을 마주하며 그들을 닮고 싶고 나도 과연 언젠가 저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라는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도 대단한 선생님들 앞에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 교사가 되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강의를 듣는 내내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과연 좋은 교사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것은 연수를 듣는 내내 머릿속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상태로 끊임없이 맴돌았다.
과연 좋은 교사란 무엇인가?
수업 기술적으로 유능해야 한다. 그렇다면 유능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교과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야 하며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적당한 유머가 녹아있어야 하고 다양한 시각, 청각적 자료를 활용하여 아이들의 인지와 정서를 동시에 자극해야 한다. 단기 기억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삶 속에 녹아들게 만드는 지식이 진짜 살아있는 지식이며 이것을 잘 해내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인 것은 말해 무엇하랴.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해내는 교사만이 유능한 교사인가. 과연 그런 교사가 몇이나 있을까? 그렇다면 그렇지 못한 교사들은 유능하지 못한 교사가 되는 것인가.
그와 동시에 행정 업무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정의와는 무관하게 학교에는 교사들이 처리해야 할 무수히 많은 행정 업무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너의 일이냐 나의 일이냐를 명확히 구분 짓는 일도 분명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런 구분을 짓기가 애매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순간과 마주했을 때 다소 싫은 소리를 듣고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지라도 체계와 시스템을 명확히 작동시킬 수 있도록 요구하는 교사가 좋은 교사인가, 그렇지 않다면 동료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여 평화롭고 행복한 공동체 구성에 기여해야 학교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신념에 따르기 위해 명확한 선을 긋지 못하고 쓰린 속을 부여잡고 내가 그 일을 떠맡거나 다른 사람이 떠맡는 것을 그저 지켜보는 교사가 좋은 교사인가.
아이들의 마음을 끝없이 헤아리며 반복되는 문제 상황에서도 결코 지치지 않고 한결같음을 유지할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교실은 끊임없는 문제의 연속이다.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가 무한루프에 빠진 상황처럼 1년을 기준으로 대상만 바뀔 뿐 마주하는 상황은 늘 비슷하다. 반복되는 상황을 마주하며 전문성이 길러지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갈등과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당혹스럽고 문제 상황은 변이를 거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다양하게 뻗어 나간다. 다소 과장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교사는 수도자의 삶과 비슷한 면이 분명 존재한다.
공교육 종사자로서 뒤처지는 학생들을 보듬고 살펴가며 수업을 진행해야 하지만 능력 있는 학생들을 발굴하여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해야 한다. 말이 쉽지 사실 수업 중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선행학습을 끝내 모든 교과 내용을 빠짐없이 숙지하고 있는 학생과, 학년 수준보다 2~3년 성취 수준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혼재되어 있는 교실 안에서 수월성과 기초학력을 어떻게 동시에 가져갈 수 있을까.
압도와 부담, 경계의 기로, 모순의 상황, 열정과 소진 앞에서 교사는 늘 헷갈리고 지친다. 그런 교사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본인 스스로 느껴봤기에 기술적인 측면보다 교사의 마음을 도닥이며 다시 한번 달려 나갈 동력을 회복시켜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핵심은 간결했다. 주변에 휘둘리지 말고 나로서 살아가자. 그리고 거기에서 교사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발견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부담을 내려놓고 잘하겠다는 마음에서 벗어나자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 몰두하다 보면 교사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교실에 연결시키게 된다는 것. 교사는 학생들에게 양분이 되어주는 사람이기에 양적 질적으로 충분하고 훌륭한 영양분을 갖추었을 때 교사로서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잘하고 있다고 힘들면 조금 쉬어가도 된다는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교사는 동네 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미움과 질타의 대상,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며 꽤나 자주 경멸과 조소에 쉽게 노출된다. 하지만 내부에서 바라보면 교사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사람이 모여 사는 이상 사건 사고가 없는 조직이 있을까. 유독 교사의 사건 사고에 민감하게, 그리고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것에 교사들은 피곤하다.
단순히 인터넷 댓글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연예인이 아닌 이상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는 사실 내 인생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내 주변의 지인이나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인터넷 댓글에서나 보았음직한 이야기들이 불현듯 튀어나오는 장면을 목격할 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헛웃음과 함께 입을 다물게 될 때가 많다.
분노 사회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분노를 표출할 곳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화살이 나에게, 내가 속한 조직에게 초점을 맞출 때면 불안과 공포 그리고 황당함과 무기력함을 감출 길이 없다. 비난은 열심히 하는 사람들조차 멈추게 한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싸잡아 이야기하는 것만큼은 피하려고 애써봐야 하지 않을까.
교사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바쁘다.
외부의 따가운 시선보다 교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나는 좋은 교사인가라는 내면의 물음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이미 충분히 좋은 교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자책하고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여기며 존재하지 않는 좋은 교사, 훌륭한 교사라는 이상향에 도달하고자 스스로를 쥐어짜낸다.
작가는 아마도 주변에서 그런 훌륭한 교사들을 많이 목격했을테다. 충분히 훌륭하고 교사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들이 지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오랜 시간 바라보며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기술이나 스킬의 습득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는 일이라는 판단을 내렸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작가는 교사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