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우습고 한심한 일이지만 살다 보면 가끔 뭣도 모르고 우물쭈물 대다가 주변에 휩쓸려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 때가 있다.
고등학교 3학년 해군사관생도가 되는 것을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 1차 내부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신체상의 이유로 임관 이후 보직 결정에 한계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은 이른 나이에 군에서 전역을 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 사실을 2차 면접 때 면접관으로부터 듣고 알게 되었고, 그 순간 해군 장교를 꿈꾸었던 2년의 시간은 거품이 물에녹아 흘러 자취를 감추듯 힘없이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다.
목표가 사라지니 공부를 하는데 동기부여가 되질 않았다. 그렇게 수능을 석 달 앞두고 급격히 떨어지는 텐션을 꾸역꾸역 붙잡아 두느라 고등학교 시절 막바지 공부가 특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자몽한 상태로 수능을 치러낸 뒤 대학 지원서를 써야 할 시기가 왔다. 서울대를 입학할 정도의 성적이 나왔더라면 과에 상관없이 아무학과나 지원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그 정도의 성적은 나오지 않았고 가정 형편상 사립대는 아예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잘 항해해 나가던 바다에서 갑작스러운 폭풍우를 만나 나침반을 잃어버린 뱃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당시의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목표도 이유도 찾지 못한 채 표류하는 상태였다.
결국 당시 동창들이 가장 많이 지원했던 지방 국립대에 어영부영 숟가락을 얹게 되었고, 서울에 위치한 대학 2곳에 지원서를 써놓고도 면접조차 가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는 자기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목표가 명확할 때에 우리는 강력하게 동기부여가 되고 그것은 곧 자기 확신으로 이어진다.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일 때 우리는 선택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그런 순간이야 말로 인간이 명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자유롭고 싶지 않은 의존적 인간성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유롭고 싶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자유롭고 싶지 않은 것인가.
자유는 무겁기 때문이다.
1+1 상품도 아니면서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라는 달갑지 않은 서비스 품목이 딸려온다.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것은 무책임함, 즉 비겁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역할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역할이 수행해야 하는 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행해야 하는 일을 수행해 낸다는 것은 맡겨진 역할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고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는 그 역할을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했기 때문이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본인이 선택해 놓고 그 선택에 따라오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그 역할에는 어떠한 책임이 따라오는가.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간호사가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나라의 고위 공직자들이 임명장을 수여받을 때 각종 선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의식들은 아무런 의미 없이 치러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자각하고, 그에 따라오는 무거운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해 진행되는 경건한 의식의 시간이다.
선택을 타인에게 미루는 것은 마음 편한 일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고 잘못되었을 때 발을 빼기 쉽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겁한 판단의 도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우리는 매일 판단하고 선택하며 살아간다. 다시 말해 매일 자유로운 동시에 매일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정도와 범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평생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긴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할 때 책임감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어깨에 짊어진 책임의 무게만큼 사람은 성장한다. 책임지지 않는 삶, 그것은 자유의 탈을 쓴 도피에 불과하다.
도망치는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처럼 도망치기만 해서는 성장할 수도,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도 없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일은 어린 시절에나 통용되는 귀여운 일탈 정도로 끝내야 한다. 삶의 무게를 내 대신 짊어져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