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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Aug 22. 2021

사람을 무너뜨리는 최악의 시련

분노마저 사그라들게 만드는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고난들과 마주한다.


상황 때문인지, 나의 잘못 때문인지, 타인의 인성이 문제인지, 그 이유가 무엇이냐에 따라 같은 부정적 피드백이라 할지라도 내가 느끼는 감정 상태는 조금씩 달라질 테지만 아무리 차이가 있다고 한들 부정적인 피드백이 기분 좋을 리 만무하다.  


살다 보면 수많은 외부의 저항과 마주할 테지만 차별과 핍박, 무시와 조롱, 비꼼과 경멸처럼 인간을 통해 전달되는 부정적 감정들과 맞서야 하는 순간이면 특히나 더 큰 기분 나쁨이 찾아온다.  


외부와 마찰이 발생할 때면 부정적인 감정은 스스로 커졌다 줄어들었다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나를 찍어 르지만 그것은 오기가 강한 사람, 또는 근성이 있는 사람에겐 차라리 약이 되기도 한다. 분노와 복수심은 때때로 강한 삶의 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기가 강하고 근성이 있는 강력한 사람들조차 무너뜨리는 강력한 시련 또한 존재한다. 가장 최악의 시련은 바로 "동정"이다. 그것은 가히 최악이다.


궂은일을 하는 사람을 쳐다보며 자기 자식에게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말을 하는 부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강력한 동정과 치욕의 감정을 생산하여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그 감정은 자식과,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감정의 새로운 파장을 만들어낸다.


그런 말을 듣고 자라는 자식은 부모의 사고 메커니즘을 그대로 답습하며 인생을 오직 승리와 패배로 나누고 패배한 사람들에겐 치욕과 동정을, 자신보다 승리한 위치라 판단되는 사람들에겐 비굴과 굴종의 태도를 품는 것을 습관화한다. 이것은 자식에게도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설령 그 부모의 바람대로 승자의 위치에 올라선다 한들 인생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바라보는 태도를 갖게 되고 그것은 끊임없는 선민의식과 우월감으로, 때로는 노예 의식과 비참함으로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는 삶을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부모의 바람과 달리 스스로 패자라고 설정한 성취 수준까지밖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평생을 자괴감과 자기 연민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가장 약하게 만드는 외부의 시련은 동정 받았을 때다. 나를 비난하는 상대방과는 전의를 불태우며 싸울 수 있다. 핍박과 멸시를 받았을 때는 힘을 키울 의지를 다지게 된다. 조롱과 비꼼 앞에서는 내 기어이 저놈을 죽이고 말겠다는 강력한 복수심이 불타오른다.


하지만 동정은 다르다. 동정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동정은 일어날 힘을 앗아간다. 동정은 무기력의 늪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동정은 인간을 살아있는 시체로 만들어버린다. 동정은 가장 강력하게 인간의 정신을 말살하는 무기다.


더욱더 최악인 것은 타인의 동정이 자기 연민으로 발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동정하게 될 때다. 내가 나를 동정할 때 인생은 한없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삶에 불을 붙일 어떠한 동력도 살아나질 않는다. 


지독한 가뭄으로 바짝 말라버린 지푸라기는 차라리 태워버릴 수 있어 괜찮다. 동정으로 어설피 축축해져 버린 장작에는 아무리 불을 붙일래야 붙일 수가 없다.


타인을 동정하지 말라, 그것은 정신적 살인 행위이다.

스스로를 동정하지 말라, 그것은 자신을 죽이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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