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책을 써본 적은 없지만 글을 쓰는 일과 책을 쓰는 일은 분명히 다르다. 글이든 책이든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함에 있어서 공통점을 갖지만, 한 편의 글과 한 권의 책은 양적인 면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점이발생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글은 아무리 길다고 한들, 글 한 편이 이백 쪽 삼백 쪽이 될 수는 없다는 소리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한 꼭지의 글을 써내려 가기는 쉽다. 메워야 할 종이의 공백이 책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하나의 주제로 책 한 권을 쓴다는 것은, 마치 이제 갓 자유형을 배운 수영강습 한 달 차인 수강생에게 한강을 횡단해보라는 것과 같이 압도되는 스케일의 장벽처럼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이름으로 된 책은 써내고 싶고, 그런 수요자들의 입맛에 맞는 강의를 하며 돈벌이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인지, 몇몇 책 쓰기 코칭을 하는 사람들의 글이나 책을 보면 책을 쉽게 쓰는 요령으로 인용을 많이 하라고 조언해주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좋은 속담이나 격언, 어떤 과학적 이론이나 가설들, 영화나 드라마의 명대사, 이러한 것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매 꼭지마다 풀어놓으며 책의 절반을 인용으로 꾸역꾸역 채우며 엮어나가는 책들, 이런 책들은 한마디로 매력이 없다.조금 심하게 말해서 나는 이런 책에서 쓸모를 느끼지 못한다.
1년에 책을 10권 썼다는 둥, 그동안의 저서가 100권에 이른다는 둥 하는 식의 간판을 내걸며 광고 효과를 누리며 책을 빌미로 삼아 강의로 돈을 벌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책을 보면 인용구가 넘쳐난다.
왜냐하면 그것은 양을 채우기 가장 쉬운 방법이며 그렇게 해야지만 책을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런 사람들의 책을 읽어보면 자가 복제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만약 다작으로 유명한 어떤 작가의 책을 앞으로 기대해도 좋을지 생각해본다면 그의 책을 딱 세 권만 읽어보면 쉽게 답을 낼 수 있다.
인용을 통해 양을 채우는 글쓰기 요령은 교실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할 때에도 자주 사용하는 방식인데 이는 앞에서 말했듯 양을 채우기 가장 손쉬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 초등학생의 글쓰기와 작가의 글쓰기가 같아서야 될까.
인용은 독서량이 많은 사람만이 적용할 수 있는 책 쓰기 전술이다. 이는 분명 많은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공허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각 장의 첫 번째 페이지마다 성경 말씀이 어쩌고, 칸트가 저쩌고, 그리스의 시인이 어쩌고, 유대인 속담이 저쩌고,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일 년은 열두 달이고 하루는 스물네 시간이며 한 시간은 육십 분이다라는 말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이 느껴진다. 즉 너무나 당연한 소리이고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들이어서 좀처럼 가슴에 울림을 주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정보 전달이 목적인 책이 있고 가슴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
학술서적처럼 이론적 근거가 탄탄해야 설득력을 갖출 수 있는 책이라면 당연히 인용이 빠질 수 없다. 명확한 데이터와 적절한 인용문을 통해 자신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소위 말하는 자기 개발서 류의 책들에서 이런 명언을 남발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사실 어느 정도 독서량이 되는 독자들의 경우에는 짜증이 난다. 이미 다른 책들에서 무수히 봤음직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용을 하더라도 좀 참신한 문장이거나 우리가 아는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을 가져다 쓴다면 귀에 좀 꽂힐까도 모르겠는데 책 쓰기 강의나 코칭을 하는 사람들이 건네주는 조언이 그다지 조언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정말 양을 채우기 위해, 그저 책의 여백을 이미 살면서 무수히 들어본 말들로 메꿔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글은 일반론일 때가 많고 일반론은 생각보다 힘이 없다
다만 일반론을 이야기하더라도 그것이 힘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일반론에 개별성을 슬쩍 끼워 넣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이야기를 섞어 넣으라는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개인적인 이야기는 일반론에도 창의성을 부여하여 지루함을 덜어주고글에 힘을 부여한다.
어떻게 하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일반론에 자연스럽고 과하지 않게 녹여낼 수 있는가, 이것이 글을 쓰면서 자주 느껴왔던 딜레마다. 일반적인 이야기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면 속담집과 다를게 무엇이며 내 이야기만 주구장창 써낸다면 일기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언제나 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은근하고도 절묘한 그 지점을 찾아내는 것, 그것은 요리에도 인간관계에도 그리고 글쓰기에도 적용되는 키 포인트이며 가장 어려운 지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