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는 김은희가 될 줄 알았을까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

by 정 호

"와카남"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와이프 카드 쓰는 남자의 줄임말이라고 하는데 든든한 경제력을 가진 부인 덕에 풍요로운 일상을 누리는 남편들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여자들도 독자적으로 가정 경제를 이끌 수 있다는 주체성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인지, 어깨가 무거웠던 50대 이상 연배인 세대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인지, 젊은 남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한 번 가져가 보고자 하는 것인지 그 제작 의도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냥 "재미"의 차원으로만 놓고 보면 기존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포맷의 콘텐츠임은 분명하다.


와카남의 대표주자라 하면 장항준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영화감독으로서의 명성보다 예능에 나와 더욱 능력을 발휘하는 장항준이지만 자기 밥벌이를 충실히 하고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다만 부인이 대세 중의 대세 작가인 김은희 작가이다 보니 본인을 스스로 낮추며 부인 덕을 보고 사는 남자로 포지셔닝해 영리하게도 예능에서 그 열매를 톡톡히 수확하고 있다.


김은희 작가는 남편이 육필로 종이에 쓴 시나리오를 워드로 옮기는 일을 하다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각본을 쓰던 초반에는 감수를 해주던 남편에게 한 번도 칭찬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도 재능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시나리오를 쓰는 일에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 글 쓰는 일은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 그만둘 생각까지 했으나 꾸준한 도전 끝에 시그널과 킹덤으로 유명세를 얻게 된다.


김은희와 장항준이 유명세를 얻기 전까지 주변에서 많은 지인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끼니를 거를 정도의 가난이 엄습할 때면 친구들이 전달해주는 쌀과 돈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고 할 정도니 현대판 흥부전이 아닐 수 없다.


처절하게 가난과 싸워야 했던 그런 시절에, 그들은 마음속에 대박의 꿈을 꾸며 글을 썼을까? 물론 인간인 이상 잘되면 주변에 신세도 갚고, 먹고살만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막연하게 이 시나리오로 대박을 내겠다는 한탕주의적인 생각으로 그 어려운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대성공에 힘입어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죠앤 롤링의 일화는 이미 너무 유명해져 꿈과 희망을 연료 삼아 현재의 고됨을 버텨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전설이 되어버렸지만 그것은 단지 유니콘처럼 실존하지 않는 전설이 아니다. 희미하고 희박하지만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고 있는, 앞으로도 존재하게 될 누군가의 이야기다.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어 보이는 일에 자신의 일생을 몰두할 자신이 있는 사람이 과연 흔할까. 흔한 것은 가치가 없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아름다움에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우면서 흔치 않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평생을 무언가에 몰두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래서 가치롭다. 아름다우면서 흔치 않기 때문이다.


살면서 몰두할 거리를 찾는 일조차 쉽지가 않다. 하물며 어렵사리 찾아낸 그 몰두할만한 무엇인가에 평생을 바쳐보겠다는 다짐은 그 자체로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한 사람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본 뒤에서야 그 사람의 가치가 진짜였는지, 그저 그런 것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껍데기뿐인 짝퉁이었는지 알 수 있겠지만 어찌 되었건 그 최초의 다짐의 순간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것만은 사실이다.


장인이라 불리는 모든 사람들은 그래서 아름답고 가치롭다. 어느 한 분야에 오래도록 몸담고 있었다고 해서 모두가 장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배움에 대한 갈망과 자신을 갈고닦으려는 노력, 다시 말해 열정과 겸손이 장인이 되기 위한 필수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김은희는 자신이 2021년 김은희 작가로 불리며 상업적 글쓰기 판의 블루칩이 될 것이라 생각이나 했을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열과 성을 다해보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 주변을 둘러보느라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