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브런치에서 뜬금없이 연말 결산이라며 그간의 브런치 활동을 몇 가지 카테고리로 정리하여 작은 선물을 보내왔다.
남들이 보기엔 별 의미 없는 한 장의 이미지에 불과할지 몰라도 브런치에 열과 성을 다했을 예비 작가들에게는 나름에 의미가 있는 작은 선물이었지 않았을까.
누군가가 나의 삶을 알아준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우리는 늘 인정에 목말라하며 인정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살아온 삶을 알아주고 짚어주는 이들에게 쉬이 마음을 내어주곤 하니까. 우정의 시작도 사랑의 시작도 언제나 알아주고 발견해내어 주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이 관계 맺음에 시작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통하는 친한 벗을 "지음"이라고 한다. 거문고 명인 백아는 유일하게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이해해준 벗 종자기가 죽자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 자가 더 이상 없다며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는데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지음이라는 단어의 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소리를 알아주다
나를 알고 내 안에서 울리는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 그것이 곧 벗 중에 벗, 지음인 것이다.빅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는 요즘 대부분의 플랫폼들이 누구보다 나의 취향과 욕망을 잘 알고 있기에 쉽게 나를 간파할수 있을지는 몰라도 설령 그렇다고 한들 한낱 컴퓨터 따위에게 내 마음을 내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동시에 영화 her가 떠오르면서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그런 생각의 끝에 다다르자 2년 동안 혼자서 조용히 글을 써온 시간을 인정받는 듯한 기분에 브런치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마저 일렁인다.
브런치가 파악한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브런치에 몸을 담은 지 2년 된 작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룬 작가, 시간 대비 글을 많이 써낸 다작 활동을 한 작가, 5.6만 뷰를 보유한 작가, 구독자 300명 이상, 좋아요 개수가 상위 1%인 작가. 간결하게 정리되어 내 앞에 차려진 수치상의 데이터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다른 브런치 작가들이 쓴 브런치 결산에 대한 글을 몇 편 읽어봤다.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부터, 보상이 거의 없어 글을 계속 쓰기 위한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아 결국 브런치 판을 떠나게 만든다는 현실적인 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한 장의 이미지를 놓고도 또 한 번 다양한 생각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러 글 가운데 나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보상"에 관한 내용이었다. 보상을 바라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지속성과 열정을 꾸준히 가져가기 위해 적절한 보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어떤 작가의 글은 공감과 함께 불안을 가져왔다.
40년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오며 1년 이상 하나에 꽂혀 무언가를 꾸준히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봤다. 글쓰기와 입시공부, 취업준비를 제외하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그나마 자의에 의한 것은 글쓰기가 유일했다.
빈약한 삶을 살아왔구나
무수히 많은 순간들을 허겁지겁 채워가며 열심히 살아왔을 테지만, 단지 시간의 지속으로 마음의 크기와 삶의 농도를 측정할 수는 없는 일일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간 지속적으로 무언가에 빠져 골똘히 시간을 쏟아부은 일이 이토록 적다는 것에 대해 적잖이 놀랍기도 한 것이 사실이었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즐거운 마음과 몰두하는 기쁨이 행복하여,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마구잡이 식이라고 할지라도 다만 혼자서 얼마간 만족하며 글을 써왔는데 "보상"과 "지속성"이라는 물음 앞에 글쓰기가 주는 즐거움의 유한성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된다.
멀리 보지 말고 현재만 바라보며 살자는 다짐은 이런 식으로 종종 흔들림을 맞는다. 지금 기쁘고, 가장 현재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글쓰기라는 행운을 운 좋게 마주해 놓고도 이 선물이 언제까지 나를 기쁘게 할지, 아무런 대가 없는 글쓰기가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지를 고민하느라 또다시 머리가 복잡해져 온다.
좋으면 좋은 것. 단순하게 살 것. 즐거움을 쫓아갈 것.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을 것.
최근 인생의 모토를 이런 쪽으로 세워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것이 언제까지 좋을지, 즐거운 것이아무런 대가 없이 영원히 즐거울 수 있을지를 묻는 누군가의 질문에 속절없이 불안이 엄습해온다.
자신의 생각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삶이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틀렸다는 주변의 말에 흔들리지도 않고 불안이라는 미지의 괴물에게 잡아먹히지도 않은 채 뚜벅뚜벅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 용기임에 틀림없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에 미래를 예측하여 대비하려는 노력은 얼마큼의 효용과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까.어쩌면 늘 계획과 대비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연이 내포하고 있는 미확정성과, 확정되지 않은 비정형이 빚어내는 불안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들뢰즈는 관성에 따라 반복했던 기존의 사유 체계에 갑자기 날아드는 외부의 침입이 발생했을 때 우연한 마주침은 발생하고 그로 인해 위대한 깨우침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우연한 마주침들로 인생은 확장되고 풍요로워질 테니 겁내지 말고 우연한 마주침 속으로 풍덩 뛰어들라는 말일 테다.
글을 쓰게 된 이후 얻게 된 습관 중 하나는, 누군가에겐 하찮고 보잘것없을지 모를 고민을 반복하고 스스로에게 자꾸만 질문을 던지게 된다는 것이다.질문의 끝에 어떤 답을 만들어 내어 놓을지 현재의 나는 늘 모르는 상태다. 그저 미래를 고민하고 과거를 반추해보며 현재는 그 틈 사이에서 찰나와 같이 갈려나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