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프 케이크를 처음 먹었을 때 느꼈던 독특한 식감이 기억난다. 연달아 층층이 이어지는 얇은 빵의 층계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채우고 있는 크림과 시럽은 그간 먹어온 빵의 포근하거나 쫀득함, 또는 사르르 녹아내리는 식감이 아니라 겹겹이 쌓인 빵의 계단을 치아로 한 계단 한 계단 밟아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하나로 뭉뚱그려진 빵의 텍스처에 익숙했던 탓에 "따로 또 같이"라는 이상적인 슬로건을 실현 중인 크레이프 케이크 앞에서 자못 겸손해져야 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크레이프 케이크가 은근히 포개어지는 것과 관련된 미각적 경험이었다고 한다면 후각적으로 포개어지는 것을 경험했던 다른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어느 가을밤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전날 가을비가 내려서인지 저녁 무렵 이슬을 맺어 두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사뿐히 뛰는 내내 수분을 담뿍 머금어 축축이 젖은 풀냄새가 싱그럽게 코 끝을 맴돌았다. 그렇게 기분 좋은 풀냄새에 취한 채 발길을 옮겨나가던 그때, 어느 순간 갑자기 들숨과 함께 콧속 깊숙이 낙엽 젖은 냄새가 기습적으로 휘몰아쳤다. 조금 전까지 코에 맴돌던 향이 싱그러운 연둣빛 풀내음이었다면 깊숙이 들이마신 젖은 낙엽 냄새는 묵직한 진녹색의 향취를 머금고 있었다. 그렇게 눅눅해진 낙엽이 쌓인 길을 걷다 보니 잠시 후에는 낙엽 젖은 냄새가 풀을 오래도록 고아 끓여낸 녹진한 한약 비슷한 냄새로 변해 폐 안으로 깊숙이 스며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얇지만 한 겹 한 겹 쌓여 한 장을 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식감을 자아내는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젖은 풀냄새와 낙엽 냄새 그리고 한약 냄새까지 묘한 경계를 이루며 포개어져 향의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내는 그런 순간처럼, 우리의 삶 안에서도 무언가 겹겹이 포개어지며 그것들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이 창조될 때가 있다.
인간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직업이나 외모 성격이나 말투 가정환경이나 재산과 같이 단순하고 명료하게 눈에 보이는 것들, 몇 가지의 대표적인 기둥으로 한 사람을 설명해내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아무리 자신의 색깔이 명료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명료함이 드러나기까지 겹겹이 쌓여온 다층적인 개인의 서사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흔히 한 사람의 어떤 일부분을 가지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쉽게 정의 내리곤 한다. 배우자를 무엇이라고 저장해 두었는지, 주말에는 어디를 다녀왔는지,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평소에 주로 사용하는 어휘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어디에 사는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우리는 절대로 알 수 없는 타인을 자상한 사람, 활동적인 사람, 우아한 사람, 돈 많은 사람, 현명한 사람, 혹은 그 반대의 언어들로 정의해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한 인간의 모든 순간을 인지할 수 없다. 그 순간의 마주침들과 마주침으로 인해 축적되는 개인의 서사에 뿌리를 두는 모든 변화의 순간들을 결코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도 삶도 그런 것이다. 포개어져 때로는 지워지고 뭉개지고 희석되어가는 와중에도 그 포개어짐으로 인하여 전혀 새로운 무엇인가가 창조되는 과정. 그래서 마주하는 것들로부터 무언가를 깨우치고 느끼며 배워나가는 사람은 늘 어제와 다른 사람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폭과 깊이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우리는 알게 모르게 모든 순간을 차곡차곡 포개어가며 살아가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 순간들을 얼마나 응시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현자와 둔자를 가르는 기준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