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강아지는 말 그대로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된 아기 강아지를 뜻한다.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된 강아지가 무엇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좁디좁은 경험과 딱 그 경험만큼의 시야를 가진 초심자에게는 무서울 것이 없다. 사자가 사자인 줄 모르고 늑대가 늑대인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하룻강아지의 문제는 초심자인 탓에잘되면 내가 잘해서 그런 줄만 알고 안되면 운이 없어서그렇다는 식의 유아적인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초심자에서 아주 조금 벗어나게 되면 그제야 주위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잘되는 것이 내가 잘해서만은 아니라는 것, 안 되는 일에도 나의 기여분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늘 나보다 더 잘나고 뛰어난 사람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단순히 그냥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나와 직접적인 연을 맺고 있는 사람 중에서 그러한 사람을 목격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나와의 관계성 안에 살아 숨 쉬는 사람은 나에게 의미 있는 타인이자,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포지셔닝되기 때문이다.더군다나 그 사람이 나의 커리어 혹은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면 그 사람의 존재는 더욱더 크게 다가온다.
손흥민이 마이클 조던의 농구 실력을 부러워할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활동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축구선수는 자신보다 축구를 잘하는 선수에게 열등감 혹은 경쟁심을 느낄지언정 농구, 배구, 탁구 선수들의 농구, 배구, 탁구 실력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활동 영역이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필드에서 뛰고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잘하건 못하건 나와 큰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나와 직접적인 관계성이 없기 때문이다. 손흥민같이 전 세계를 누비는 수준의 선수에게는 모든 프로 선수들과 필드에서 만날 확률이 있을 테니 조금은 일반적인 범주로 영역을 축소시켜 보자. 우리는 이재용의 재력이 부러울까 회사 동료의 로또 당첨이 부러울까. 아마 후자일 확률이 높다. 이재용은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회사 동료는 나와 꽤나 밀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분야에서건 초심자를 갓 벗어난 사람은 자기가 활동하는 분야에서 본인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의 존재가 자꾸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고통과 갈등은 시작된다.
할 수 있는 만큼만 vs 이걸 해서 뭘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어렵사리 찾아냈고 그간 쏟아부은 시간과 정성이 아까워서라도, 세상 모든 분야엔 1등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비록 보잘것없는 작디작은 몫의 능력이 어딘가에도 귀하게 쓰일 곳이 있으리라는 믿음 하나로 혼자서 조용히 수련을 거듭하다가도 압도적인 실력과 퍼포먼스를 보이는 동료를 목격하는 날에는 내가 가진 능력과 노력이 너무도 부질없이 작고 초라해 보인다.
4등이라는 영화가 있다. 1등 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대한민국의 세태를 비판하며 금은동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는 4등에게도, 세상의 수많은 조연들에게도 너희들은 살아갈 가치와 의미가 있으니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수영을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의 주제에 충분히 공감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4등만 하다 보면 정말 순수하게 행복한 마음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꼭 1, 2, 3등을 해서 메달을 목에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꼭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려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들의 인정을 받아야만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죽을 때까지 4등만 하게 될지도 모를 압도적인 1, 2, 3등의 실력을 목격하게 될 때, 그리고 그들이 나와 관계없는 저 먼 세상의 존재가 아닌 나와 가까운 곳에서 숨 쉬며 일상을 공유하는 존재일 때, 나는 그때에도 순수하게 나만의 즐거움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
글을 꾸준히 써온지 2년 정도 되었다. 수십 년씩 글을 써온 사람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시간일 테다. 아니 꾸준히 글을 쓰지 않았어도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글을 쓰지 않고 살았을 때에는 세상에 따분하게 글이나 쓰고 사는 사람들은 전업 작가를 제외하곤 없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웬걸, 글을 쓰며 이곳저곳 글과 관련된 모임에 발을 들이밀어보자 전업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 쓰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도처에 널려있는 것을 너무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좀 잘 써보겠다고 글 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들어갔더니 글쓰기 실력이 늘기는커녕 자꾸만 위축이 돼서 좀체 글을 쓰기가 어렵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된다더니, 호랑이를 잡으러 갔다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게 된 셈이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 까막눈이었다. 그저 신이 나서 썼고 쓰게 되니 신이 났다. 한데 요즘은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기가 겁이 난다. 좋은 글들을 자꾸 보다 보니 내 글은 죄다 의미 없어 보이고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꾸준한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만족할만한 성과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있다. 다만 그때까지, 밀려오는 파도를 견뎌내지 못하고 스러져버리는 모래성처럼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파도를 맞으며 제풀에 못 이겨 스러져버리진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가슴 한편에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