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언가를 떠올릴 때 직접적으로 그것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떠올리고 싶은 것의 이미지를 직접 떠올린다기보다 그것과 관련된 어떤 상징물을 통해 떠올리고 싶은 이미지에 도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주로 추상적인 어떤 관념을 떠올릴 때에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과라는 대상을 떠올릴 때에는 그냥 사과를 떠올릴 수 있지만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릴 때에는 사랑과 관련된 어떤 상징을 떠올림으로써 사랑이라는 관념에 다가선다. 누군가는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연인 간의 사랑을 떠올릴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절대자에 대한 헌신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이처럼 사과와 같은 구체물이 아닌, 사랑과 같은 추상적 관념을 떠올릴 때에는 상징물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다시 말해 상징물을 통해서만 우리는 관념에 도달할 수 있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여름 하면 뭐니 뭐니 해도 갈증을 순식간에 해갈해주는 시원하고 달큰한 수박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만 같다. 수박 씨앗을 삼키면 배꼽에서 수박 나무가 자란다는 어른들의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수박씨를 삼키지 않고 일일이 뱉어내며 먹는 습관을 가지게 된 나 같은 사람들 역시도 수박의 달콤함만큼은 아무래도 포기할 수 없는 여름이 주는 귀한 선물이다.
한바탕 퍼붓는 장맛비역시도 본격적인 여름을 맞이하기 전에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이다. 되도록이면 장마와 천천히 마주하여 올여름 더위가 조금이라도 늦게 오기를 바라는 것은 여름의 더위에 지친 모든 이들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먹는 백숙은어떨까. 더위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물가를 찾는다. 바다도 좋지만 그보다는 청량하고 개운한 맛이 있는 계곡이 여름의 더위를 피하기에는 더욱 좋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수도 없이 많을 텐데 왜 그토록 많은 전국의 계곡 평상에는 허옇게 삶아져 소금에 찍혀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닭백숙만이 상다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 역시 어느 순간 여름의 상징물이 되어버렸다.
이런 것들 말고도 사람마다여름 하면 떠오르는 어떤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있을 테다. 나는 여름 하면 찌르르 찌르르 쉼 없이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유독 떠오른다.
매미는 알 - 번데기 - 성충의 과정을 거쳐 생을 살아가는데 성충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기간이 무척이나 짧다. 매미는 여름 무렵에 성충이 된 후, 한 달 정도만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그 한 달간 후손을 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달의 짧은 삶을 살아낸 뒤 매미는 나무에 알을 낳고 죽는다. 그 알은 일 년 정도 나무 안에서 자라나다가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는 나무 아래에서 수액을 빨아먹으며 5~7년 정도 성장한다고 한다. 그렇게 긴 인고의 시간을 거쳐 번데기는 어렵사리 성충이 되었지만 그 보답은 짧고도 짧은 한 달의 생에 불과하다.
인내의 시간에 비해 성충이 된 뒤 매미의 삶은 턱없이 짧아 보인다. 자신에게 주어진 그 짧은 시간마저도 후손을 생산하는데 대부분을 소비해야만 하는 운명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매미의 존재 이유가 궁금해졌다.
자연의 섭리에 따르면 하찮은 미물들조차도 각자의 역할과 의미가 분명 존재한다고 하였건만 오랜 시간 애벌레와 번데기로 지내다가 고작 한 달의 삶을 살아가며 한다는 일이 후손을 만들고 죽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매미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언제 끝날지 모르게 큰 소리로 끊이지 않고 울어대다가도 어느 순간 잠잠해지고, 또 잠잠해졌나 싶다가도 어느 순간 소리를 포개며 울어대기 시작하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장마철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처럼 시원스럽기도 하고, 한 여름 내리쬐는 태양 빛처럼 쨍쨍하기도 하다.
그저 덥다 덥다 하다가도 매미의 매앰 매앰 거리는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왠지 비로소 여름이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다소 인간 중심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매미의 존재 이유를 여기서 찾아보려고 한다.
여름이 왔다는 것을 온몸으로 강력하게 알리는 여름의 전령사, 그것이 매미가 자연에게 부여받은 역할과 의미는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여름이 왔을 때 매미를 가장 먼저 떠올려줘야 매미에게 조금은 덜 미안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매미와 함께 여름을 맞이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