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계절이 언제냐고 물으신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지금은 여름

by 정 호

어느 계절이 좋으냐고 누군가 물었다. 특별히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탓에 그저 즉흥적으로 어느 때는 봄이 좋다고 답했다가 또 어느 때는 겨울이 좋다고 답하기를 반복했다.


어린 시절엔 막연히 가을이 좋다고 답했던 적이 많다.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는 느낌이 좋아서였을까? 단순히 그런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또는 너무 더운 여름이나 너무 추운 겨울처럼 극단적인 계절 값이 싫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극적인 상황과 맞닥뜨리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일까. 즐기는 계절만이라도 극단성을 피해 보고 싶다는 바람이 무의식 중에 묻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별다른 이유 없이 평온과 고요를 품고 있는 것 같은 가을이 좋았다.


세월이 흘러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봄이 그렇게도 좋았다. 신학기의 넘치는 에너지를 주고받는 느낌이 그렇게 활력 충만하게 다가올 수 없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만남, 새로운 관계 속에서 온갖 새로운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렇게 그 시절의 봄은 나에게 새로움과 함께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지금의 나에게 어느 계절이 좋으냐고 다시 한번 묻는다면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여름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을 한번 생각해보자. 좋았던 기억과 추억이 스며들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 또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하나씩 떠올려 봤을 때 가장 기뻤던 기억이 많았던 계절이 여름이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친구들과의 여행은 대부분 여름이 배경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놀러 가 과일을 먹던 기억도 여름이고, 아들의 웃음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물놀이와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는 꺼리가 많은 여름이다. 이런 기쁨의 근원이 무엇인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끈적한 더위와 그 더위를 식혀줄 수 있는 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좋아한다는 것, 기뻐한다는 것은 갈증을 해소하는 과정은 아닌가. 끈적한 더위를 마주하며 그것을 회피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해갈해 보려는 노력과 그 노력이 결국 결실을 맺게 될 때, 그때가 바로 기쁨을 낳는 하나의 순간으로 각인될 테다. 여름은 그렇게 나에게 기쁨을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