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같은 것을 먹어도 누구는 똥을 싸고 누군가는 근육을 만든다

by 정 호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라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는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내용은 둘째치고 제목을 정말 기가 막히게 뽑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무뢰한들과 마주하는가, 그리고 그런 순간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 왔고 그렇게 대처한 후에는 어떤 감정을 느끼곤 했는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상대방이 무례한 말과 행동을 주인공에게 던질 때 그들은 결코 당황하지 않으면서 냉정하고도 단호하게 대처하는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모습은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끌어 오르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만큼 영웅적이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그런 모습을 쉽게 마주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일을 해내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규정을 벗어나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고객의 요구에, 팀원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상급자의 막무가내식 명령에,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쥐락펴락하려는 부모의 이기심에,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며 은근히 우위에 서려는 친구의 교만함에 우리는 얼마나 직접적으로 내면의 소리를 내며 깨지고 부딪혀가며 살아왔던가.


아마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속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을 조금씩 죽이고 외부의 요구에 순응 혹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 이는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물길을 마주하며 씻겨져 흘러내리는 거품을 다시 억지로 억지로 머리 위로 쓸어 올리는 것처럼 녹아서 흘러내리고 있는 내 안의 자존심을 살려두기 위해 가까스로 꾸역꾸역 붙잡아두는 것과 같다.


우리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도처에 널려있다. 밥줄과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 때문일 수도 있고, 관계 소멸에 대한 불안이나 언제나 좋은 사람으로 남아있고 싶은 개인의 내적 심리상태 혹은 천성적 기질 때문일 수도 있다.


내 마음 안에 거대한 폭풍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위기의 순간에 나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것이 개인의 소심한 기질적 특성이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 단편적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넘기기에 우리 외부에는 언제나 복잡한 관계성이 형성되어 있으며 인간은 안타깝게도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행동을 결정하기 힘든 존재이다.


하지만 이런 위기의 순간이 가끔씩 찾아오는 일은, 장마철 내리는 비나 겨울에 내리는 눈처럼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어떤 자연의 법칙과도 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자연환경은 주기와 시기라도 대략 정해져 있어 그런대로 대처가 가능할 테지만 무뢰한들은 지뢰밭과 같아서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몰라 나도 모는 사이 밟았다가 터지면서 나에게 꽤나 큰 충격과 심리적 잔상을 남기는 것 정도라고 할까.


그때가 바로 결정적 순간이다.


위기의 순간은 결정적 순간이다. 위기에 무너지면서 내 마음에 새로운 상처를 하나 더 새기도록 가만히 놓아둘 것인가. 지혜롭게 위기를 이겨내어 길이길이 빛나는 영광의 훈장을 추억으로 남길 것인가.


위기의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역량을 맘껏 뽐낼 수 있는 기회이자 나의 그릇을 넓힐 수 있는 단련의 시간이다.


연인 간의 다툼이 있을 때에도 이는 똑같이 적용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서운해하는 상황이라면 그 상대방은 아마도 쉽게 포용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서는 휘몰아치는 타인의 감정을 얼마든지 보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도 상대방도 모두 화가 나있고 양쪽 모두 서운한 감정에 빠져있을 때다. 이때에는 상대방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상대방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데 상대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내 안의 소용돌이가 너무도 강렬해서 내 안의 폭풍조차 감당해내지 못하는 상태인데 어찌 상대방의 폭풍까지 껴안을 수 있을까.


이때가 바로 위기이자 기회의 순간이다. 자신의 마음이 폭풍의 한가운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안아줄 수 있을 때, 그때 내 마음의 크기는 한 뼘 훌쩍 자라난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영웅 혹은 어른이라 부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영웅이 되는 일과 같다. 어른이 되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면 우리 조금만 당황하고 잠시 생각에 잠겨보자. 이것은 나의 어떤 면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인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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