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

by 정 호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와 다른 부분이 많은 타인뿐 아니라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타인 조차도 어떤 순간에는, 그동안 내가 알고 지내던 그 사람이 정말 맞나 싶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때가 있다.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정보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과연 타인에 대해서 얼만큼의 정보를 알 수 있을까? 아니 전부를 알고 있다고 한들 그 사람의 행동양식을 완벽하게 예상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것은 지금까지 언제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타인의 해석"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우리가 타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일이 어려운 3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인간은 타인을 해석할 때 진실 값을 기본으로 둔다.(진실 기본값)

둘째. 인간은 자신의 내면과 외면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투명성 오류)

셋째. 맥락에 따라 같은 행위도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대치와 결합)


즉 우리는 타인을 해석할 때에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진실하리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한다. 이것은 진화론과 효용성의 측면에서 일견 납득이 되는 해석인데 타인이 진실하지 않다고 가정하게 되면 너무나도 비효율적으로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적인 세팅값에 반해 인간이 겉으로 드러내는 자신의 정보는 내면의 것과 불일치할 때가 많다. 대부분의 사기꾼들이 푸근한 인상을 풍기는 것, 겉으로는 엄하지만 속은 따듯한 우리네 아버지들을 이러한 불일치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우리 인간 세상은 오해로 가득 차게 되고 이런 오해는 머지않아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여기에 더해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좋은 특수한 상황 맥락. 즉 결합까지 갖춰지게 된다면, 우리에게 타인은 그야말로 거의 외계 생명체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첫 월급을 탔을 때 즈음 소액의 사기를 당했더랬다. 퇴근 후 친구와 저녁을 먹고 헤어진 뒤 집으로 걸어가던 어둑해지기 직전의 저녁 무렵으로 기억한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중후한 목소리를 가진 젠틀한 중년 남성이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그 :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나 : 말씀하시죠


그 : 부산에서 출장을 왔는데 급한 일정 탓에 정신이 없었던지 택시에 가방을 통째로 놓고 내려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교통비로 5만 원만 빌려주시면 집에 도착하는 대로 계좌이체를 해드리겠습니다. 계좌번호와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시면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나 : 그렇게 하시지요.


정확한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흐름이었다. 나는 타인을 대할 때에 진실 값을 기본값으로 두었고, 그는 투명하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첫 월급이라는 특수한 상황 맥락이 겹쳐 약간의 설렘과 들뜬마음까지 뒤섞여 사기당하기 적절한 맥락적 요소까지 덧붙여졌다.


그냥 순진해서, 세상 물정을 몰라서라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면 말콤 글래드웰이 제시한 세 가지 요소가 적절하게 포진해있는 것을 발견해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아내와 연애할 때 있었던 사건이 하나 떠오른다.


나는 남자 친구 둘과 술을 마시고 있었고 아내는 아내의 여자 친구 둘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친구들은 아내와 아내의 친구들을 우리가 있는 술집으로 모셔달라고 성화였다. 그녀들이 와주기만 한다면 나의 노예라도 되어줄 기세였던 그들의 성화에 못 이겨 나는 여자 친구에게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와달라는 말을 전했다. 어렵사리 합석한 만큼 그녀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지 평소보다 더욱 애쓰는 친구들과 나의 모습이 유체이탈을 경험한 것처럼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듯했다. 한데 그러던 와중에 그녀들의 표정을 보고 오해가 생겼다.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표정이었다. 뚱한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경멸의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정확한 감정의 근원을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보고 나는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마치 광대가 된 것 같아서, 나와 친구들이 그녀들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만 같아서, 친구들에게 미안했고 여자 친구에게 서운했고 여자 친구의 친구들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그녀들의 놀이문화였다. 어떤 재미있는 상황이나 웃긴 상황이면 으레 그런 류의 표정을 지으며 즐겁다는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을 결혼 후 한참이 지난 후에서야 그녀들끼리 공유하고 있는 독특한 문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일반적인 반응의 범주를 벗어난 표현이었기에 그것은 투명하지 못한 정보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들의 예외적 반응이 나의 세상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그녀들은 고려하지 못했을 터였다. 만약 그 자리에 내가 혼자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는 맥락. 즉 특수한 상황이 결합되었기 때문에 그날 나는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여자 친구의 친구들에게 화를 내는 무식한 남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타인을 잘못 해석하여 오해하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갈등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투명성과 맥락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나의 힘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은 오직 기본 세팅값을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두는 것뿐이다.


지금 내가 이해한 것 말고 다른 의미가 있겠지, 나의 상식에 부합하지 않지만 또 다른 의도가 있겠지,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 말고 다른 진실이 존재할지도 모르지.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이해 못할 상황들을 마주하게 될 때 그 즉시 이해 못할 것들을 진실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것, 다른 일말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 그것만이 내가 타인을 해석할 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필요 없는 곳에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매번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의심스러운 상황, 화가 나는 상황, 타인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게 되는 순간이면 이것을 반드시 떠올려야만 한다. 그것만이 내가 타인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과연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타인을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너무 큰 의식적 노력이 필요한 행위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다가 문득, 이해란 어쩌면 사랑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어쩌면 사랑의 발현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랑이란 불완전한 서로를 상대방의 불완전함으로 채우는 것이라고 한다. 애초에 불완전한 인간이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런 감상적인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타인을 해석하는 일이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여러 사례와 지표를 통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어쩌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종교와 비슷한 영역에 속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꼼꼼히 따지기 보다,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를 개인이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저 나의 세상으로 받아들일지, 나와 상관없는 세상에 그대로 놓아둘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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