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만 되면 신문과 뉴스조차 재미있어진다는 말처럼 임용 공부를 하던 대학 4학년 시절, 작은 유혹에도 고개가 돌아가던 상황에 처음으로 "웹툰"이라는 세계를 알게 되었다. 만화는 만화책방에 가야지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던 당시의 나에게 인터넷에서 공짜로 만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당시 웹툰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서 봤던 만화들 가운데 최근 개봉한 "지금 우리 학교는"도 포함되어 있었다. 징그럽고 잔인한 장면을 잘 못 보면서도 좀비물은 좋아해 흥행에 성공한 좀비영화들을 대부분 찾아봤고 영화학도도 아니면서 최초의 좀비 영화가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에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라는 영화도 찾아볼 정도로 이상하게 좀비물에 끌렸다.
디스토피아적인 좀비물 특유의 절망적이면서 음울한 분위기가 유독 기억에 남아서인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가족마저 버리고 달아나는 장면이 충격적으로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인지, 좀비물이라는 장르를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최초의 장르적 각인효과 때문인지, 영화를 본 당시의 나이가 어려서 이런 모든 것이 더욱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동안 보아온 좀비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좀비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28일 후"가 떠오른다.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우울함이 포인트다. 귀신이나 악령이 등장하는 공포물이 주는 섬뜩함이나 놀람과 달리 좀비물은 좀비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들 사이에 일그러진 욕망과 가족을 비롯한 각종 상실감이 어둠을 극대화한다.
좀비물이 주는 영화적 쾌감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좀비와의 대결이 주는 긴장감과 액션 카타르시스이고 다른 하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인간들 사이의 갈등과 해결의 과정이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의 주된 배경은 학교 안이다. 한 도시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이지만 극의 대부분은 학교 안에서 진행된다. 학교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학교폭력, 사이버 성범죄, 가해자 처벌의 무효함, 미혼모 문제 등 자연스럽게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룬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너무 많은 사회적 이슈들을 녹여내려다보니 이야기가 너무 늘어지는 느낌을 주는 면도 없지 않다. 기존에 흥행에 성공했던 넷플릭스 드라마오징어 게임이나 지옥, D.P 등이 모두 10회가 되지 않는 짧은 분량 안에 함축적으로 이야기를 담아냈던 것에 반해 12회 분량의 "지금 우리 학교는"은 처음부터 늘어지는 서사에 대한 우려가 존재할 수 있을만한 분량으로 제작되었다.
늘어지는 서사 이외에도 뻔한 신파의 반복(가족의 죽음, 눈물, 원망, 회피)과 사건들 사이의 개연성과 설명 부족(좀비의 선택적 운동성 발휘, 청산이 창문에서 떨어졌다가 살아남는 장면) 평면적 캐릭터, 적절치 않은 유머 코드, 지나친 로맨스 등을 단점으로 지적하며 드라마가 인기에 비해 과대평가되었으며 이런 부분들이 극의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평이 많다. 나 역시 드라마를 보며 모두 충분히 공감했던 부분이다.
상실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좀비물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정서를 이 드라마에서도 역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상실감이다.상실감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상실감을 설명하자니 무언가 부족하단 느낌이 든다. 상실감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요소는 바로 피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불가항력적이며 회복불능의 상태로 빠져드는 것이 바로 상실이다. 피할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으니 그 무력함을 어찌할 것인가.
부모와 자식과 친구를 잃고 수능시험을 볼 기회를 잃고, 누군가가 구하러 올 것이라는 희망을 잃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잃고,미래를 잃고, 살아갈 동력을 잃어버린다. 어쩌면 감독은 좀비라는 소재를 통해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좀비화 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죽거나, 좀비가 되거나, 도망가거나셋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다른 선택은 없다. 결국 회피하거나 동화되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것은 과연 좀비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나를 동화시키거나 회피하는 작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그것은 자본주의일 수도 있고 세속적 명성일 수도 있으며 그 외의 무수한 프레임들이 우리를 좀비처럼 쫓아오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본주의에 나를 최적화시켜 모든 것을 자본의 원리로 설명하는 뇌구조로 나의 뇌를 세팅시켜 철저한 자본주의자가 되거나, 자본주의를 거부하며 각종 대항 운동에 참전하여 반자본주의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좀비와 맞서는 방법일 테다.
이것이 어디 자본주의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우리는 늘 우리를 옭아매는 프레임들에 둘러싸여 그것과 맞설지 순응할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마치 좀비와 마주하며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이를 악물고 도망치거나 어쩔 수 없다는 듯 눈물을 흘리고 고함을 치며 좀비의 먹잇감이 되어 결국 같은 좀비가 되는 것을 선택하고 마는 등장인물들처럼 우리도 매일, 좀비가 될지 도망칠지 고민하며 살아가는 셈이다.
당신을 쫓아오는 좀비의 정체는 무엇인가. 끝까지 도망쳐볼 것인가, 두 눈을 한번 질끈 감고 맘 편히 좀비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