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죽는다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나에게 그런 일이 현실로 닥칠 것이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무의식이 죽음을 아주 먼 훗날의 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마치 초등학생이 군대에 대해 막연히 두려워하지만 본인이 스무 살이 되면 통일이 되어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을 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죽음이 막연히 두려우면서도 그때 가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죽음과 직면하는 것을 회피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우리도 아주 가끔은 죽음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해질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장례식장에 갔을 때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우리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장례식장에 다녀온다는 것은 내가 아는 사람이 죽었거나 아는 사람의 가족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 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나와 관련되어 있는 일에만 전심으로 느낄 수 있다. 뉴스에 나오는 각종 범죄에 대해 머리로는 분노하지만 가슴 절절히 슬프고 괴롭지 않은 이유는 그 사건의 대상이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에게 동일한 사건이 닥쳤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곧바로 몰입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의 죽음은 나에게 죽음을 상기시키지 못하지만 지인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날이면 우리는 죽음에 대해 평소보다 깊이 생각하게 된다.
죽음을 생각할 때면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승진이나 명예, 부와 권력, 사랑과 우정, 어차피 죽으면 이 모든 것들과 단절된 채로 나는 홀로 고독하게 떠나가게 될 터인데 사는 동안 나는 왜 이런 온갖 것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런 모든 것들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사람마다 행복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쥐고 싶어 한다.
부, 명예, 권력, 가족, 사랑, 우정, 인정, 자아실현 등등 좋아 보이는 온갖 것들을 수집하느라 우리는 한정된 시간을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에 쏟아붓지 못하고 불행한 평균을 위해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죽음과 가까이 마주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하고도 지혜로워진다.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낼 수 있게 되고 본질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진짜로 느끼는 사람들만 삶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파악해 내어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것들을 골라 가지치기해 낼 수 있다.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삶을 빛나게 하고 충만하게 해주는 진짜 보석이 무엇인지 그제야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을 앞둔 사람에겐 남은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부수적인 것은 의미가 없다. 오직 본질적인 것만이 의미를 가질 뿐이다.
죽음을 가장 명확하고도 확실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는 나에게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을 때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내 삶이 곧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 목숨을 담보로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잘 살아보자고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것인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에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의 죽음은 어쩌면 그 사람이 나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추모하며 삶이란 무엇이고 행복이란 무엇인지,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가 깊이 한번 고민해 보라는 선물.먼저 간 사람을 떠나보내며 우리는 다시 우리의 삶을 정돈해 볼 기회를 갖게 된다.
그래서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죽음에 한층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육체가 늙어 실질적으로 죽음에 가까워지는 경우를 뜻하기도 할 테지만 정신적으로 자의에 의해서 건 타의에 의해서 건 죽음을 자주, 그리고 진지하게 마주해 봤던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영생을 꿈꾸는 사람. 영원히 살것처럼 구는 사람은 결코 지혜로워질 수 없다. 보통의 경우 어린아이가 지혜롭기 어렵고 노인에게서 지혜를 기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느 정도 당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혜로운 어린아이, 지혜롭지 못한 노인, 이는 양쪽 모두 불행하고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솔직해진다.
우리는 자주 스스로를 죽음 앞으로 몰아넣어봐야 한다. 그래야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 진짜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우칠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간다.
죽기 직전에 인생 헛살았다는 후회를 하는 것만큼 허망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잘 살았다며 웃으며 눈 감을 수 있도록 잠들기 전, 다시 한번 죽음에 대해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