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 죽는가

육체적 기능의 소진만을 죽음이라 할 수 있을까

by 정 호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다.


만화 원피스에서 명대사로 꼽히는 장면 중 한 장면이다.


이 말은, 인간의 죽음을 단순히 육체적으로 기능이 다해 운동을 멈추게 되는 생물학적 죽음과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며 죽음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고찰하게 만든다.


죽음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심장이 멈추어 혈액이 공급되지 못해 신체의 모든 부위가 비활성화된 상태, 즉 생물학적으로 모든 기능이 정지된 모습을 떠올린다.

이는 육체적인 사망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죽음을 완벽하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해 저마다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 테다.


원피스의 작가처럼 타인의 기억에서 내가 소멸되었을 때, 즉 세상에서 나의 존재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순간을 죽음이라 정의한다면 나라는 존재의 유기체적 신체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고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 된다. 물리적인 경계를 넘어서 타인의 의식 속에 남아있음 여부로 죽음을 정의 내린다면 자식이나 가족, 친구들의 기억 속에 나는 영원히 살아간다는 말이 단순히 멋을 부리기 위한 뜬구름 잡는 말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


죽음은 과연 무엇일까


매 순간 숨을 쉬고 끼니마다 식사를 하며 하루에 한두 번씩 똥을 생산하는, 유기물로써 이 세상에 존재해 나가던 내가 더 이상 자연의 일부로 기능하지 못하고 존재를 감추게 되는 것을 육체적 소멸이라고 정의한다면, 정신적인 죽음 혹은 정서적인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신적인 죽음이라고 한다면 치매나 식물인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육체의 모든 부분이 본래의 기능을 해내지 못하게 되었을 때 병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듯이, 치매에 걸리거나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더 이상 자신의 정신력으로 어떠한 사고의 과정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것을 정신적 사망, 혹은 정신적 멈춤의 상태로 정의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죽어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불의의 사고로 육체가 갑작스레 기능을 멈추거나 코마 상태에 빠져 정신 역시 기능을 일순간에 멈추게 되는 순간적인 육체적, 정신적 죽음이 존재할 테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죽음 말고 점진적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종류의 죽음 또한 존재한다.

병에 걸려 서서히 기능이 둔화되는 육체의 질병을 떠올려보자, 암과 같은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우리는 죽어간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육체의 기능이 서서히 정지의 시간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신이 서서히 멈추어가는 정신적 죽음의 과정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꼭 치매나 식물인간이 되어 내가 나로서 의지와 사고를 드러낼 수 없는 순간만을 정신적 소멸이라고 보아야 할까?

정신이 죽어간다는 말을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의 정신은 언제 죽어갈까? 일순간에 작동을 멈추어버리는 것 말고 서서히 아주 조금씩 정신이 소멸이나 억압, 퇴보와 같은 부정적 상태로 빠져들어가게 될 때 우리는 정신이 죽었다고 표현한다.


정신이 서서히 메말라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대부분 정신적으로 극심한 충격을 받게 되어 그 상태에 정신이 멈춰버려 물리적인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 멈춰진 상태에서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은 서서히 활동을 멈추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은 언제 극도의 충격을 받게 되는가. 우리의 정신에 충격을 주는 주체를 내적인 충격과 외적인 충격으로 나눌 수 있다.

외부적인 충격은 상황이나 타인에게서 비롯된다. 심각한 트라우마가 생길만한 상황에 노출되거나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미칠 것 같은 스트레스를 받게 될 때 우리의 정신은 극도로 쇠약해진다.


내부적인 충격은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되었을 때 받게 된다. 이것은 외부적인 충격 못지않게 커다란 정신적 타격을 스스로에게 입힌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누가 봐도 비인간적, 비인격적인 행동을 자진해서 감행했을 때, 그때 밀려오는 극심한 자괴감과 자기혐오는 자신의 정신을 처절하게 말살하기 시작한다.


외부적 충격이든 내부적 충격이든 결국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는 원인들은 인간의 감정과 연관이 있다. 우리의 감정 깊은 곳에 있는 인간으로서의 긍지나 자긍심, 자존감 같은 것들이 타격을 입을 때 우리의 정신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 죽지 않기 위해서, 즉 멘탈 관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마음을 돌보지 않고 정신을 논할 수 없으며 죽어버린 정신을 살리기 위해 단순히 정신적 차원에서만 접근해 봐야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정신도 육체와 같아서 이미 한번 죽어버린 뒤에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죽어가고 있는 신체와 영혼은 육체가 회복을 하듯 어루만짐과 치유를 통해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다.


우리는 육체의 건강만 꼼꼼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으며 신체상의 문제를 사전에 찾아내어 예방하듯 정신과 마음의 문제 역시 정기적으로 들여다봐야만 한다. 말기 암은 발견해 봐야 너무 늦다. 정신 역시 마찬가지다. 정신이 죽는 순간 육체 역시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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