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월은 어림잡아 420일 정도 될 테고 그 기간 동안 200편의 글을 끄적여 왔으니 대충 이틀에 한 편 꼴로 14개월간 글을 써온 셈이다.
이 글이 아마도 200번째 글이 될 것 같다.
200번째 글이라는 것을 기념 삼아 기념을 주제로 글을 쓴다.
100번째 글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작가들의 첫 작품이 참신하고 대단하다는 평을 받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그만큼 쓸 말이 많고 아이디어가 넘쳐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넘쳐났던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도 글을 쓰는 초반에는 무척이나 할 말이 많았다. 온갖 것들로부터 글감이 떠올랐고 기록하고 다듬는데 쓸 시간이 부족하면 부족했지, 글감을 떠올리는 데 있어서는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100번째 글은 기념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지나쳤던 것 같다. 부족한 글일망정 영원히 그렇게 정신없이 쏟아져 나올 줄 알았던 모양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념을 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정도를 챙기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기념이라는 행위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꽤 묵직한 행위라는 것을 금세 인정하게 된다.
옛날 옛적 관혼상제와 24절기는 인간의 짧은 생과, 빠르게 변해가는 계절 속에서 기억해두지 않으면 곧 잊혀 사라져 버릴 중요한 것들을 되새기려는 노력에서 만들어낸 일종의 기념일 테다. 심지어 어떤 때에는 이런 기념일을 지키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위태로워지거나, 심지어는 실제로 먹을 것이 없어져 목숨마저 위협받을 정도의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는 이유로 반드시 챙겨야 하는 기념일로 인식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각종 종교 지도자들의 탄생일, 세계 각국의 유적지에 세워져 있는 비석들, 학교마다 세워져 있는 100주년 기념석, 묘비에 새겨져 있는 직계 존비속의 이름들, 이러한 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모두 동일하다. 기록해두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들, 다시 말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토록 기억하고자 함이다.
기억은 영원하다
세계는 영원하지 않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우리는 그 불완전한 것들을 기억하려 애쓴다.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서 우리는 영원 비슷한 것에라도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도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구전동화 속의 이야기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나 콩쥐팥쥐 이야기처럼 나라마다 디테일한 부분은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 주제나 교훈은 비슷한 형태로 남아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것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런 형태의 세대적 계승을 통해 옛이야기는 영원에 가까워진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 어린이 동화책, 각종 재해석(영화, 애니, 반전동화 등), 때로는 시험이라는 다양한 형태로 옛이야기는 형태를 바꾸어가며 기념하고 기념되는 것이다.
기념한다는 것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기념할 것을 챙기다 보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념하지 않으면 언제 그런 존재가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기념할 필요는 없다. 정말로 기억하고 싶은 것. 소중히 품고 적어도 내가 죽는 순간까지는 마음속에 품고 있고 싶은 것, 그 정도만 기억하고 기념해도 충분하다. 기억하고 기념할 때에만 우리는 영원에 가까워질 수 있고 그때에서야 비로소 끝이 두렵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