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책이 좋아 도서관 사서를 꿈꿨던 적이 있다. 사서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에 그런 꿈을 꾸었다는 사실이 지금에 와서는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직업을 선택한다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갈림길 앞에서 저토록 순진한 생각을 했었던 순간이 나의 인생에 존재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없었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여 아득히 먼 옛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책만 보는 바보"는 제목만으로도 그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하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 안나 카레니나 -
안소영 작가의 책 "책만 보는 바보"는 팩션이다. 조선시대 선비 이덕무를 주인공으로 하여 팩트를 재료 삼아 소설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젊은 시절 서자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출세의 가능성이 막힌 채, 양반으로도 평민으로도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써의 삶을 살아가며 느꼈던 정신적 고뇌와 현실적인 굶주림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덕무는 따스한 햇살과 책 한 권으로 가난과 굶주림, 추위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에게 책은 친구이자 도피처였던 것이다. 고난의 시간을 겪어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 괴로움을 버텨내기 위해 탈출구를 찾아내고야 만다.
나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
나의 불행의 씨앗 역시도 가난이었으나, 가난에 더해 신분의 제약으로 인한 절망감까지 끌어안고 있었을 이덕무에 비하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덕무처럼 나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입시 공부로, 입시가 끝난 대학시절에는 춤으로 시선을 돌려가며 가난을 바라보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찬 바람을 막기 위해 책을 병풍처럼 세워두었다는 대목을 보며 나의 가난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취업과 결혼 이후 나의 형편은 많이 나아져서 이제는 먹고 살 걱정을 간신히 면하긴 했지만 20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원룸 방에 월세로 이사하는 것으로도 감격할 정도로 나의 집안 형편은 곤궁하였다.
가난에도 급수가 있다면 나는 몇 급 가난이었을까.
나의 가난을 생각해보면 벌레와 추위가 떠오른다. 빛에 민감한 바퀴벌레는 환하면 숨었다가 어두워지면 나타난다. 잠을 자려고 불을 끄는 순간 들려오는 스르륵 스르르륵 바퀴벌레가 천장을 기어 다니는 소리는 어느덧 익숙해질 지경이었다. 자고 일어나 이불을 털면 이불에서 개미만 한 새끼 바퀴벌레들이 몇 마리 툭툭 털어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엄지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날개를 펼쳐 나에게 날아오는 장면은 술자리에서 지인들을 웃겨주기에 좋은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싱크대 아래 펼쳐놓은 쥐덫에 걸려 달아나려고 버둥거리고 있는 쥐를 보았을 때, 집이 얼마나 추웠던지 화장실에서 얼어 죽은 상태로 발견된 쥐를 보았을 때, 나는 가난하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삶을 괴롭게 하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혹여나 벌레가 내 콧구멍이나 귓구멍으로 들어가는 끔찍한 상황이 자꾸만 떠올라서 나는 결혼 후 지금의 신혼집에서 살기 전까지 머리를 이불로 감고 자는 습관이 있었다. 그 시절에 살던 주택들이 조악하여 더욱 그러했겠으나 주택은 곤충과, 추위 더위에 취약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는데 해마다 동파되는 수도관을 보며 그해 겨울의 추위를 가늠하곤 했다. 집에서 입김이 나오는 것은 예삿일이요, 이불 두 겹 세 겹도 모자라 패딩을 입고 자던 날도 비일비재했다. 주로 오래된 주택을 옮겨 다니며 살았었는데 대부분이 지어진 지 오래된 집이어서 기름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 기름을 땔 수 없어 가스레인지에 아침저녁으로 씻을 물을 데워서 씻곤 했던 기억이 난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던 이덕무가 그의 삶을 지탱해 낼 수 있었던 까닭은 책과 더불어 마음을 나누는 벗이라는 단단하고도 든든한 또 하나의 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덕무는 젊은 시절 다양한 벗들과 교류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자신과 상황이 비슷한 서자 출신들과 주로 마음을 나누었다. 비슷한 처지에 처해 있으면서 비슷한 마음과 생각의 결을 가진 사람들과 친해지는 일이란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일이 아닐까. 극도의 가난으로 아사 직전의 상황에 처한 가족들을 위해 본인이 아끼던 책을 팔아, 한 끼 식사를 해결한 뒤 유득공에 집에 찾아가는 주인공의 마음은 어땠을까. 비참함과 자괴감을 도저히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어서 찾아온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유득공 자신도 마찬가지로 아끼던 책을 팔아 친구에게 술을 한 잔 대접한다. 나는 어려움에 처한 친구에게 어떤 손길을 내밀었을까. 나의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현실의 벽에 부딪혀 변해가는 벗을 탓하고 왜 열심히 살지 않느냐고 다그치던 나를 경멸한다. 나의 값싼 동정을 거절하는 것에 서운해하기만 했을 뿐 진정으로 친구의 마음을 보듬어줄 생각을 하지 못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이덕무는 또 다른 친구 박제가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며 그의 세심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붉다'는 그 한 마디 글자 가지고 온갖 꽃을 얼버무려 말하지 말라. 꽃술도 많고 적은 차이가 있으니 꼼꼼히 다시 한번 살펴봐야지.
박제가의 이 시를 통해 그가 얼마나 세심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으며 실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김영하 작가는 한 방송에서 본인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짜증 나"라는 말을 금지시켰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짜증 나"라는 표현을 하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본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하였다. 짜증나라는 표현 하나로 나의 감정이 화인지 서운함인지 비참함인지 슬픔인지 살펴볼 겨를이 없이 뭉뚱그려 표현되어버리기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특히 경계해야 할 자세라고 힘주어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언어는 정신을 지배하고 나아가 삶의 방향성을 가르기 때문에 꼭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섬세한 자세가 필요한 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이덕무를 주인공으로 한 이 책에서는 유득공과 박제가 이외에도 백동수와 이서구라는 두 절친한 벗을 소개하고 있는데 모두 글을 좋아하고 사려 깊은 품성의 소유자라는 점과 훗날 실학을 바탕으로 나랏일에 몸담게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 각자의 성품과 처한 상황은 조금씩 다른데 이러한 지점에서 나오는 각기 다른 매력이 주인공 이덕무가 진심으로 벗들에게 흠뻑 빠질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박제가로부터는 세상에 갖는 불만과 그것을 삭히지 않고 직설적으로 폭발시키는 분노와 열의를, 유득공에게서는 언제 어느 때고 온화하고 주변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평온함과 유쾌함을, 백동수에게서는 적극적인 행동력과 호쾌한 기상을 바탕으로 사람을 끌어모으는 친화력을, 이서구에게서는 명문가의 적자라는 혈통에서 나오는 당당하고 자유로운 모습을 부러워하고 동경하여 그들과 가까이 지내는 동안만큼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신분제도라는 벗어날 수 없는 족쇠가 부여하는 근심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책의 초반부를 읽는 동안에는 이덕무와 그 친구들이 겪고 있는 신분상의 제약이 안타깝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글에 몰두하며 세상 일을 잊고자 애쓰는 모습에 공감이 되었다. 하나 끝까지 읽어가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그토록 진실되고 진한 마음을 나누어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에게 그러한 친구는 누구일까, 나는 또 누구에게 그런 친구일까 자꾸만 되묻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부러운 마음이 넘쳐흐르는 것을 틀어막기가 힘들었다.
비록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오래도록 만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언제 어디에서건 반드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 그때의 만남이 주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서로를 그리워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그의 벗들을 통해 잠시 엿본듯한 느낌이 들었다. 최선을 다했고,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인생이라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