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 이유가 궁금하기보단 누군가가 책을 읽으며 나를 떠올려줬다는 사실이 고마워서 그 마음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라도 꼭 그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인터넷에 제목을 검색해본 결과, 광주의 5월을 다룬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은, 대체 이 책의 어떤 부분이 나와 겹쳐 보였던 것일까?라는 궁금증에 밀려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하지만 감사함과 호기심으로 시작된 독서가 이 책만큼은 꼭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변한 것은 진정 찰나의 순간과도 같았다.
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그 어떤 다큐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나는 지금껏 5.18과 광주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사회 교과서를 통해서 중고등학교 내내 배웠고 각종 매체에서도 많이 다루었으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살아가고 있었기에,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는데 이런 나의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소년이 온다"는 그날의 광주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읽게 만드는 책이다. 그래서 읽어내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눈을 질끈 감아버릴 정도로 생생한 작가의 묘사는 사진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욱 선명한 이미지를 내 머릿속에 때려 넣었다. 도무지 빠르게 읽어 내려갈 수가 없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연기처럼 피어올라 그 날의 모습을 나의 두 눈 앞에서 생생하게 재현해내고 있어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기억해달라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간절한 외침처럼 들려서 도무지 쉽게 읽어 넘길 수 있는 장면이 없었다. 소년이 온다는 그 날의 참상을 겪은 6명의 캐릭터를 통해 현재를 마지못해 살아내는 사람들과 기어코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처절하고 비참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외전화 오늘도 안 되지?"라는 짧은 한 문장에서 나는 여태껏 느껴본 적 없던 5월 그날의 광주에 두 발 딛고 존재했던 사람들이 느꼈을 두려움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완벽하게 외부와 고립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지옥과도 같은 살육의 현장을 맞닥뜨리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이란 얼마나 간절했을까...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90년대에 30대였던 우리나라민주화운동의 선봉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386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갖고 있는 부채의식과 죄책감에 대해서도 미약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는데가령 "쓰러진 사람들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막 일으키려 했을 때, 광장 중앙의 군인들 쪽에서 연발 총성이 터졌다. 맥없이 청년들이 쓰러졌다. 너는 거리 맞은편의 넓은 골목을 건너다봤다. 삼십여 명의 남자와 여자들이 양쪽 담벼락에 붙어 서서 얼어붙은 듯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같은 문장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한강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 책을 쓰게 위해 5.18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다 읽기 전에는 글을 쓰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두 달이 지나자 찾아오는 악몽들로 인해서 그 다짐이 무너졌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참상을 자신의 인생으로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라는 문장에서 우리는 그들의 삶을 짐작할 뿐이다.
각 장에서는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중학생, 시위 도중 죽어간 학생, 살아남아 오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 , 그날의 도청을 끝까지 지켰지만 그 후유증으로 죽음과 삶의 경계를 오가며 살아가는 남자, 노동운동을 함께했던 한 여성, 시민군에 참여하여 죽어간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다양한 삶을 통해 그날의 비극을 서술하고 있다. 특히 6장을 읽으며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는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져 너무도 고통스러웠고, 남은 자식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막내아들을 등 뒤에 남기고 못 본 척 돌아서야 했던 심경을 짐작했을 때에는 가슴을 치는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문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연애소설을 제외하고는 문학에 취미가 없었는데 이번 소년이 온다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눈 앞에 보이는 듯 생생한 재연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문학의 위대함을 느끼며 이런 위대한 작품을 써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을 존경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떤 소재는 그것을 택하는 일 자체가 작가의 표현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다. 한국문학사에서 80년 5월 광주가 그러한 소재다"라는 추천사의 부담감을 감히 초월해냈다고 할만큼 탁월한 작가의 필력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에필로그에서 동호의 큰형은 인터뷰를 한 후 책을 써도 되겠냐는 작가의 질문에 흔쾌히 그리해 달라고, 다만 제대로 써서 더 이상 자신의 동생이 모욕되지 않게 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남긴다. 그 부탁을 지키기 위해서 작가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며 수많은 밤을 잠들지 못했을까.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니며 결코 신파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현대사의 비극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것만 같아 너무도 슬프고 죄스러운 마음에 책을 다 읽은 후에도 한 동안 책을 덮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