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보통의 언어들

이런 글을 한 번이라도 써낼 수만 있다면

by 정 호
이 문장이 내가 쓴 글이라면 좋겠다.

글을 읽다 보면 '이 글이 나의 손을 거쳐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질투와 동경이 혼재된 감정을 간혹 느낀다. 물건이나 사람에게만 소유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글을 대할 때에도 소유욕이 발동되는 것을 보면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구나 싶어서 어디 또 낯설고 새로운 형태의 감정의 작동이 일어나지 않는지 유심히 나의 마음을 살피게 된다.


이런 생각은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주로 하게 되는데 최근에 읽은 수필집 1권 때문에 오랜만에 다시 한번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김이나 작가가 지은 "보통의 언어들"이라는 책이 바로 그것인데, 작가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경험을 버무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스타 작사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 사고의 과정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느낌을 표현해내는 문장을 눈으로 따라 읽다 보면 혹여나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온전한 느낌을 놓칠까 아까워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서 두 번 세 번씩 꼭꼭 곱씹어 읽고 있을 때가 많다. 국어사전을 펼쳐놓고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을 공부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읽혀서 우리 언어의 미묘한 차이와 절묘한 사용처를 알려주는 교재로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재벌, 갑질, 애교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는 언어라는 점은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만들었다.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경험하고 인식할 수 있었던 작가의 이 경험은 그녀의 글에 녹아들어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왔기에 미처 생각해본 적 없고 인식할 수 없었던 나의 언어적 틀을 한 겹 벗겨내 주는 역할을 했다.


부끄럽다는 단어를 설명할 때에는 수줍음과 수치스러움의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수줍은 부끄러움이란 대책 없이 미소가 배시시 흩어지는 장면이고 수치스러운 부끄러움이란 손에서 놓친 도시락 통에서 반찬이 쏟아지는 상황이라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손으로 책상을 탁 치는 리액션이 절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언어적 상상력은 찬란하다는 단어를 이야기할 때 극에 달했다. 찬란하다는 단어는 유리 조각들이 부딪혀 챙그렁대는 소리가 나거나 햇빛이 내리쬐어 물비늘이 관찰되는 모습이 떠오른다는 그녀는 언어학자도 아니면서 언어의 생김새에까지 파고들어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한데 그 과정이 상당히 납득이 되며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으로 보아 문학적 상상력은 때때로 학문적 논리력을 뛰어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상대가 미안하고 말하는 순간은 마치 끓는 냄비가 올라간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는 것과도 같다. 더 끓일 의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바로 식지는 못한다.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사과를 받은 사람 쪽에서 필요한 겸연쩍은 시간이란 게 있다. 마지못해 내민 손을 다시 잡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기까지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몹시도 무겁다. 이 무거운 발걸음을 기다려주는 것까지가 진짜 사과다.

삐짐이나 짜증이 후루룩 끓어오르는 물이라면 분노는 끓다가 넘치는 물이다. 물이 역류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물이 가득 차있기 때문인 것처럼, 나의 이성이 감당할 수 없는 한계를 넘을 때 분노는 터져 나온다.


사과와 분노에 대해 설명한 문장 중 이보다 더 가슴에 와 닿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문장을 본 적이 없다. 이런 문장을 보고 어떻게 감탄하지 않고, 어찌 이 작가의 언어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글과 삶이 완벽히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야 물론 존재하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을 마주하였을 때 불현듯 느껴지는 경이로움이란 대자연의 풍광을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경외감에 비하더라도 결코 뒤처지는 것일 수 없다.


김영하 작가는, 작가란 말을 수집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김이나 작가의 글을 보다 보니 말을 수집하는 사람이라는 정의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의 단어를 보고도 다각도로 생각해보는 태도, 각각의 의미에 적합하게 들어맞는 사례들을 찾아내어 그녀의 글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으로도 그녀의 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섬세하게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 작가란 분명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가르침을 전수받은 기분마저 들었다.


이렇게 섬세하게 잘 짜인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 사람이 궁금해진다. 그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알고 싶어 지고 그 사람이 평소에 하는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어 진다. 그 사람이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옆에서 살펴보고 싶어 진다.


김이나 작가가 책에서 이야기한 싫증에 대처하는 자세를 본받고자 한다. 아니 본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마음을 홀리는 글을 쓴 사람의 다른 글을 대체 무슨 수로 찾아 읽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 또한 그녀의 책이 싫증 나지 않도록 그녀가 쓴 가사들과 라디오 방송을 찾아 들으며 다양한 그녀의 생각의 자취를 따라 걸어봐야겠다.

아무래도 그녀의 팬이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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