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이 읽기에 더 어려운가 비교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독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굳이 가독성이라는 기준을 두고 생각해 본다면 전자는 조금은 수월하고 후자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문장을 읽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책은 글 자체가 주는 맛에 그저 흠뻑 취하기만 하면 된다. 기가 막힌 문장의 표현 기법에 의해 그 아름다움과 생경함을 느끼고, 탁월한 비유와 사물 간의 연관성을 포착해내는 작가의 탁견에 이마를 치며 그저 놀라워해 주고 나의 삶에 비추어가며 한 글자 한 문장을 음미하기만 하면 된다.
글을 천천히 곱씹고 음미한다는 것은 나의 삶을 거울삼아 비추어 보며 공감되는 부분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그런 후에 공감되는 부분에는 진심 어린 공감을, 공감이 되지 않은 부분은 어렵지만 받아들임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의 삶에 비추어 볼 수 있다는 최소한의 기준점이라는 것이 있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상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에 아름다운 문장, 감동적인 문장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몰입하는 것은 노력의 문제라기보다 본성의 문제에 가깝다.
본능적인 것은 어찌 보면 노력이 필요치 않다. 나라는 판단의 기준이 존재하고 노력이 필요치 않은 본능에 따른 읽기이기 때문에 문장을 읽는 독서는 차라리 쉬운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삶을 읽어내야 하는 책은 다르다.
같은 문장이라고 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어떤 때에는 그 어떤 수사도 사용하지 않고 그저 덩그러니 툭 던져놓은 투박한 한 문장을 붙들고 오열에 가까운 극심한 감정의 파동을 느끼게 될 때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문장을 읽었기 때문이 아니다. 문장 안에 들어있는 인물과 그 인물의 삶이내 안으로 갑작스레 들어왔기 때문이다.
인물의 상황과 배경, 그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았을 때 전달되는 메시지는그저 눈으로 글을 읽었을 때 느낄 수 있는 메시지와 차원이 다른 무게를 가진다.
이 책은 정약용과 황상이라는 몇백 년 전 인물들이 주고받은 시와 편지를 모아 해설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그들의 관계와 그들이 처한 환경 등, 70년에 가까운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다.
한두 세대 이전의 인물도 아니고 몇백 년 전 인물이 쓴 글을 읽어내려면 인물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당시의 글, 다시 말해 당시의 문장 자체만을 놓고 이해를 도모하기에는 사용되는 문체나 맥락 어투가 현재와 너무도 다른 이유로 문장의 의미만으로 책을 읽어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정약용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을 보면가문이 몰락하고 과거 시험을 볼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연유로 자녀들이 더욱 공부를 해야 하며 그런 악조건에 처한 사람들만이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자녀들을 채근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를 두고 단순히 문장만으로 해석하려 한다면 위인 정약용조차 자신의 자녀들 앞에 서면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우리네 부모와 별다를 것 없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가벼운 독해로 독서를 끝마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앞서 말한, 문장만을 읽는 독서를 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참극이다. 정약용이라는 인물과 그 시대적 상황, 그리고 그 인물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보았을 때 정약용이 자식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은 결코 우리네 부모들이 자식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는 것과 같은 무게로 다뤄질 수 없다.
인물의 삶을 읽어내야 하는 독서는 어렵다. 책 한 권 읽기도 벅찬데 그 사람의 삶과 걸어온 발자취, 당시의 시대적 배경까지 공부하고 파악해가며 책을 읽어야 한다니 여간 귀찮고 복잡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본 책의 44개의 꼭지 중 열 번째 꼭지 "20년 공부가 물거품입니다"를 보면 정약용과 강진 백련사 혜장 스님의 일화가 나온다. 이 챕터의 마지막 부분에는 다산과 혜장이 나눈 대화가 적혀있는 비석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역사가 스며있지 않은 물건이 어디에 있을까. 특히 비석과 같이 특정한 정보를 담고 있으면서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기물엔 반드시 그 기물을 세워둘 만큼 의미 있고 누군가가 기억해줬으면 하는 소망이 담긴 역사가 스며들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간 어느 유적지나 문화재를 관람할 때면 그저 눈으로만 정보를 스윽 읽고 지나쳤을 뿐 그 비석의 역사나 비석과 얽혀있는 인물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본 책에서 다산과 혜장 스님의 대화는 깊은 울림을 준다. 스스로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한 인간이 자신보다 더욱 뛰어난 사람을 만나 겸손함을 배우는 모습,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며 즐거움을 나누는 모습이 비문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하니, 마치 그 비석의 뒤에 두 인물이 생존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비석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인물의 삶과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의미 없었던 물건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쉽게 오는 것은 쉽게 가고 어렵게 얻은 것은 그만큼 오래도록 남아있기 마련이다. 이런 고되고 지루한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지만 그 과정을 허투루 하지 않고 몰입해 낸 사람만이 삶을 읽어내는 독서를 완수할 수 있다.
그때 얻게 되는 삶의 진리와 해답, 독서의 가치는 문장을 통한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그것과는 결이 다른 깊이감을 선물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