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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옛이야기의 힘

나를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

by 정 호

자신의 인생을 풀어놓을 수만 있다면 누구나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 정도의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나오며 각자의 이야기들은 다듬고 또 다듬어져 사람과 세상, 그리고 인생에 대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귀물이 된 존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야기다.


책 "옛이야기의 힘"은 그림 형제와 이솝 우화를 비롯한 세계명작 동화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전래 동화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연구하여 각각의 이야기가 품고 있는 보편성에 오랜 시간 작가가 진행해온 연구와 수업의 결과물인 주관적 해석을 곁들여 인생의 여러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친절하고 따듯함을 품은 책이다.


문학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고 상처의 회복을 돕는 문학치료학이라는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저자는 본 책을 통해 이야기와 인간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성장, 사랑, 현실, 행복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소재삼아 다양한 방식으로 자문자답을 하며 신선한 통찰과 새로운 시선으로 인간과 세상을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신선한 해석으로 옛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넓혀주기도 하고 이야기 자체가 주는 재미에 빠져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주관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끊임없이 독자에게 건넨다는 점이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객관적인 것은 옳고 주관적인 것은 그르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그 생각의 근원을 쭉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이 세상은 절대 선이자 무조건적인 진실인 이상의 세계(이데아)가 있고 그것은 오직 인간의 이성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객관의 세계이며 인간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기에 객관의 세계에 도달하기 힘들어 현실(동굴)에서 이상의 일부(그림자)만을 좇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플라톤의 사상은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쳐 객관적인 것(이상)은 언제나 옳고, 주관적인 것(동굴의 그림자)은 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결핍되고 부족한 반쪽자리 진실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런데 객관적인 진실과 보편적 사실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기는 한다는 말인가. 객관적 믿음의 대표적 근거가 되는 "과학적"사실이라는 것도 지금까지 발견된 지식에 근거하여 객관성을 담보할 수밖에 없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과학적 근거의 대 변혁이 이루어졌듯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적 사실조차 그저 "지금 이 순간까지"만 객관적일 뿐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불완전성을 품고 있는 과학을 과연 완벽한 절대 선이자 무조건적인 옳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보편성이라는 것은 또 어떤가. 만장일치가 아닌 이상 "절대다수"는 완전무결함을 품을 수 없다. 100% 완벽히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대다수, 절대다수가 동의한다고 해서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면 보편성이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소수의 의견이 빠져있는, 어쩔 수 없이 일부는 빠져있을 수밖에 없는 미완의 보편이 될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객관적인 것을 높게 쳐주는 세상 속에서 주관의 힘을 강조하는 "옛이야기의 힘"은 어쩌면 주류에 반기를 드는 비주류적 삶의 태도를 응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동화를 보고 이렇게 해석할 때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보고 있는가. 옳고 그름의 세상은 없다. 나와 너의 세상만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를 건네는 저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주관을 드러내고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답이 정해져 있는 세상. 객관적인 것이 우월하고, 옳고 그른 것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는 생각이 주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어쩌면 이 책은 주관의 세상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진리는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한다 하더라도 알 수 없으며
알 수 있다고 해도 전달할 수 없다


철학자 고르기야스의 말이다. 인간은 주관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객관의 세계를 동경하고 추구하려는 사고의 체계가 어쩌면 우리의 불행의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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