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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린이라는 세계

천진함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포착하는 사람의 아름다움

by 정 호
아름답다.


아이들을 자신의 삶 깊숙한 곳으로 받아들인 사람만이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잔잔하게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든다. 아이들의 귀여운 말실수를 보고 있노라면 틀린 것을 고치고 가르쳐줘야 한다는 어른들의 생각은 순식간에 무장 해제가 되어버린 채 그저 웃을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게 되어버린다.


진수성찬을 성수신찬으로, 말괄량이를 말랼광이로, 탕진을 탈진으로 말하는 아이들 앞에서 그저 웃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을 어찌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들의 순수함은 진지함을 품고 있다. 그래서 결코 가볍게 대할 수 없다. 진지함 앞에서 장난스러운 것만큼 무례한 행위가 또 있을까. 그렇기에 아이들의 진지한 부족함은 어른들로 하여금 진지한 태도를 요구한다.


미래를 확신하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은 또 어떠한가. 너무나 아름다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을 잠시 마주하는 듯한 기분에 눈물겹기까지 하다. 나중에 커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어 개를 다섯 마리 키울 계획이라는 아이의 말속에서 무한한 천진함과 진실 어린 희망,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된다.


이런 종류의 감정들은 성인에게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특성이기에 이 책은 어른들에게 일종의 판타지 소설을 읽을 때의 낯섦과 참신함, 로맨스 소설을 읽을 때의 달콤함과 수줍음과 비슷한 결의 감정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해리포터를 읽고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 갈지 케임브리지 대학에 갈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이에게 대한민국의 수능과 수험 생활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가려면 서울대에 가는 것 이상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가르쳐줘야 올바른 것일까?

어린이들의 허세가 멋진 이유는 진지하고 낙관적이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감히 누가 그들의 꿈을 비웃는 경박한 무례함을 범할 수 있으랴. 허세를 부리는 아이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마음껏 허세를 부리도록 가만히 놓아두어야겠다. 그 허세는 내가 거기까지 자라겠다는 하나의 선언과도 같다는 말을 듣고야 말았는데, 어찌 그 싹을 매정하게 잘라낼 수 있으랴.


어쩌면 어린 시절은 눈을 뜬 채 계속해서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는 시절일지도 모르겠다. 꿈은 언제고 깨어나게 되어 있다. 언젠가 깨어날 텐데 굳이 지금 행복하고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을 애써 깨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저 좋은 꿈을 꾸도록, 꿈을 꾸는 동안 안전할 수 있도록 이불도 덮어주고 온도를 조절해주면 그만 아닐까?


이 책은 아이들의 귀여움과 천진난만함이 고스란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작가가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에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점 역시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아이에게 착하다는 표현을 선뜻 사용하지 않는다는 대목에서는 아이들에게 착함이라는 굴레가 씌워져 그 아이의 삶을 구속할까 염려하는 마음이 충분히 느껴져 깊은 감동을 준다.


이것은 섬세함이다. 나의 말 한마디, 내가 아이에게 전하는 작은 태도 하나가 아이의 삶에 혹여나 잘못된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 조심하려는 마음. 이런 태도로 아이들을 대하니,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미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것을 누리고 품위를 익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겨울철 겉옷을 손수 입혀주고 벗겨주며 아이들이 스스로 대접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대목에서는 감탄이 나왔다.


아이들은 정말 모든 것을 흡수한다. 본 대로 행동하고 들은 대로 말한다. 대접받은 아이가 타인을 대접할 수 있고 사랑받은 아이가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작가에게는 이것이 단순히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미래를 위해 베푸는 작은 선의였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코 작지만은 않은, 커다란 선순환의 시발점이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아름다운 것은 보기에 좋다. 보기 좋을 뿐 아니라 꼭 품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소장해두었다가 내 주변의 아이들이 떠오를 때마다 한 번씩 들춰보면 좋을, 귀하고 아름다운 책을 한 권 찾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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