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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Oct 11. 2021

선생님~ 우리 아이가 스마트폰 중독인가 봐요

무엇을 믿고 살 것인가

"우리 아이가 스마트폰 중독인가 봐요. 어떡하죠 선생님? 집에 오면 게임만 하느라 통~ 말도 안 하고 요즘은 짜증도 부쩍 늘어서 걱정이에요. 사춘기가 와서 그러는지..."


인과론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믿음에 따라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들"이라는 결과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많은 전문가들은 다양한 진단을 내린다.


정말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존재하는 것일까 근본적인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경우를 진단하고 해석하는 무수한 분석들 가운데 가장 힘을 얻고 있는 제1원인은, 아이가 외부의 스트레스로부터 도피하고자 스마트폰이라는 손쉬운 도피처에 중독된다는 것이다.


중독과 도피.
이것은 과연 자제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만 발생하는 현상일까?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끝끝내 담배를 끊지 못하는 전국에 부모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그만하라고 외칠만한 어떤 명분이 있을까. 중독된 것을 끊는다는 것이 그토록 힘들다는 것을 담배를 통해 이미 아이 앞에 스스로 입증하고 있으면서 아이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다는 말인가.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다는 이야기는 드라마에만 나오는 소재일까? 인과론이 맞다면 드라마라는 결과의 원인은 언제나 현실이다. 드라마는 늘 현실을 기반으로 태동한다. 현실이 더 드라마 같다는 말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술에 취하면 개가 되어 폭력을 일삼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술에서 깨어나면 늘 반성과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 왜 또다시 그놈에 술을 결국 입에 털어 넣게 되는 것인가.


어린 시절 가끔씩 철학관에 가서 사주팔자를 보고 오는 날이면 그날 들은 이야기를 나에게 전하는 엄마와 참 많이도 싸웠다. 초년에는 힘들 테지만 중년 이후에 잘 풀릴 거라는 말. 인복이 많고 관운이 있어 사회적인 명망과 덕을 얻어 나이를 먹을수록 승승장구할 거라는 말. 처복이 있어 결혼 이후 재물 운이 들어온다는 말. 그때는 엄마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힘든 시절을 견뎌내기 위한 안쓰럽고도 처절한 몸부림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근거 없는 미신 따위에 의지하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 하지 않으려는 나약함으로 받아들여 속이 상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쉽게 풀리지 않고 늘 굽은 길을 돌아가는 것만 같은 삶을 살아오면서 "왜?"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마음속에 품고 살아왔다. 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상황마다 혼자서 나름의 답을 내려보기도 했지만 턱없이 빈약한 생각의 원천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찰나, 우연한 기회가 찾아와 철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역사 속의 수많은 철학자들을 만나며 그들이 정립해온 생각의 구조와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들에 대해 나름의 체계적인 방식으로 답을 내려가는 철학자들의 지성과 태도에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신실한 종교인들이 참 많다. 우리나라는 종교에 자유가 있고 자유롭게 자신에게 맞는 종교를 선택해 종교생활을 영위할 수가 있다. 종교가 수많은 부정과 불법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종교를 이용해 부정을 저지르는 일부 지도층의 문제이지 평범한 일반인들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일 테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종교는 큰 안식을 준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큰 일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또는 종교를 믿기 시작하면서 우연히도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체험한 사람들에게, 종교는 그들의 삶에서 절대적 지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배우자를 일찍이 먼저 떠나보내고 자식들에게 의지하며 살아온 한 여자의 이야기를 우리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과는 결혼하는 것 아니다."라는 말로 한 인간의 슬픔을 외면하고 거부한다. 인생 꼬이기 싫으면 구정물에 뛰어들지 말라는 말은 어떤 이에게는 조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중독되고, 도피하며, 의지하는 것. 이것들의 공통점은 어딘가 무너져내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살아내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나약하고 일상은 언제든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추우면 따듯한 곳이 그립고 더우면 차가운 물이 간절하듯, 갈피를 못 잡고 휘청거릴 수밖에 없을 때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의지할 곳을 찾는다. 앞서 말한 모든 것들제발 나 좀 살려달라는 무언의 외침이었던 셈이다. 때로는 중독으로 때로는 도피로 때로는  지성적인 의존으로 모습을 바꾸어가며 인간을 욕보이게 만들지만 별 수 없다. 삶이란 때로 그렇게 처절해야만 간신히 버텨낼 수 있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 방판에 현혹되는 노인들을 어찌 욕하기만 할 수 있으랴. 그들은 모두 철저히 외로운 사람들이었을 테다. 어떤 누구도, 심지어 가족들조차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을 때 그들의 손과 마음을 쓸어주고 어루만져준 유일한 사람들이었기에 지갑을 열고 때로는 심지어 가족들마저 내팽개치는 비이성적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한없이 나약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따듯한 빛을 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이니까. 무엇을 믿고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되도록이면 그것이 건강하고 주체적인 방식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제서야 그 모든 것들이 진심으로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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