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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Dec 01. 2021

중독의 이유

나는 오늘만 산다

영화 레퀴엠은 마약에 중독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굉장히 세밀하게 묘사한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등장인물들은 아주 우연히 발생하는 작은 사건으로 각자 중독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중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둠의 끝으로 자신을 조금씩 밀어 넣는 행위이다. 한 번에 끓는 물에 들어가 죽는 개구리는 없듯이 눈에 훤히 보이는 불행에 가벼이 자신을 내던지는 인간 역시 흔치 않다. 불행은 늘 멀리 있는 것처럼 자신을 숨긴 채 조용하고 은밀하게 우리 뒤에 다가와 서있다. 무언가에 중독되는 일 역시 그렇게 진행된다.


인간은 크고 작은 중독에 빠지곤 한다. 우리가 중독이라는 단어를 떠올림과 동시에 연쇄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대표적인 연관어로는 마약, 알코올, 니코틴, 도박, 게임, 성, sns 등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중독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들에 속한다. 세기가 강력하고 인생에 끼치는 위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무시무시한 것들에게 중독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개인이 처한 환경이나 성향에서 비롯되는 어떠한 루틴 같은 것들이 조금 더 일상적이고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중독의 종류일 테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혼자서 행하는 자신만의 어떤 루틴, 큰 일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점 집을 찾아가는 행위, 주식투자를 할 때 기업의 가치를 분석하여 장기 투자를 하기보다는 하루하루의 수익에 매료되어 스켈핑(초단타)에 중독되는 행위, 그 외에도 탄수화물, 설탕, 운동 등 우리 곁에는 우리를 중독시켜 우리의 삶을 앗아가기 위해 설계라도 해 놓은 것처럼 촘촘하게 짜인 중독의 연결고리가 주변에 포진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런 크고 작은 중독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마음 줄 곳이 없어서? 공허하고 외로워서? 원하던 성취를 해보니 허무해져서? 즐거운 일이 없어서? 모두 다 맞는 말이다. 다만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Carpe diem 그리고 seize the day


인간이 무언가에 중독되는 이유는 그것이 완벽하게 나를 현재에 머무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과거와 미래를 응시하며 살아간다. 라틴어로 현재를 살아가자는 의미를 가진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이 유명세를 타게 된 이유는 그것이 단지 영화의 명대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인지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아! 우리는 왜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서야 현재를 바라보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과거의 슬픔과 후회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계속해서 과거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불안하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가득한 미래를 걱정하고 그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으며 살아간다. 다시 말해 인간은 회한과 불안의 노예인 셈이다. 이토록 고달픈 삶 속에서 어찌 오늘을 가만히 들여다볼 여유가 생길 수 있으랴.  


더욱 불행한 것은 이런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열심을 다해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미래의 늪에서 헤어 나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이 순간이 바로 중독에 빠지는 이유가 탄생하는 시점이다. 중독은 단번에 이런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마법의 묘약인 셈이다. 무언가에 중독되어 그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는 순간, 과거와 미래는 그 사람의 머리에서 지워진다. 마시면 단번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사랑의 묘약처럼 중독은 과거의 회한과 미래의 두려움을 잠시나마 우리의 머릿속에서 완벽에 가깝게 지워주는 일을 해낸다.


중독은 얼마나 강력하고 효과적인가. 평생을 바쳐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수도승들조차 해내기 어려운 무아의 지경에 단박에 뛰어들게 되는 셈이니 어쩌면 종교인들이 수련의 끝에서 원하던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무언가 다른 길로 빠져 탐닉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일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중독을 예찬하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성실하게 자신을 잘 가꾸어 오던 사람들마저 그것에 왜 그토록 허무하리만치 쉽게 무너져 내리는지 생각을 하다 보니 결국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오게 되었다. 결국 중독은 불안한 사람들이 빠져들게 되는 것이 맞다. 그 불안이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든, 미래에서 비롯된 것이든, 아니 어쩌면 현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모든 종류의 불안은 인간을 잠식한다. 그리하여 도망갈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을 때, 인간은 죽을 줄 알면서도 독이든 사과를 베어 무는 것처럼 예견된 파멸이 스며있는 중독을 덥석 집어먹고 마는 것이다. 오늘만 산다는 말이 슬프게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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