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모교 앞을 지나치다 새로이 단장한 것들 사이에 여전히 변치 않는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골목 안 가게들을 마주칠 때면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그것은 아마도 흘러가버린 시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아련해진 기억의 어느 끝자락 즈음에 손을 가져다 댈 때 느껴지는 한 조각의 포근함과 그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이틀이 멀다 하고 발길을 재촉했던 장소 앞에 서서 그 무수한 시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려 애써보지만 희한하게도 혼자서 기억을 떠올리려 버둥거릴 때에는 쏟아부었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건져 올려지는 기억 조각은 잘게 부스러져 온전치 못한 상태로 떠오를 때가 많다.이럴 때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라도 한 명 곁에 있었다면 세월이 지워버려 흐려지고 부수어진 추억 조각들을 서로 덧칠하고 맞춰보며 온전한 형태에 가깝게 복원해 낼 수 있으련만, 혼자서는 아무래도 그러기가 힘에 부치기도 하고 도무지 흥이 나질 않아 아쉬움을 뒤로한 채 슬며시 고개를 돌리곤 가던 길로 발을 재촉하고 만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장소가 어쩌면 이렇게 흐려질 수 있을까 싶어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듦과 동시에 그 옆에 딱 한번 가본 시골 의원에서 있었던 일이 너무도 생생히 기억나는 통에, 빈도와 시간 그리고 기억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번 갔던 장소보다 딱 한번 갔었던 장소가 더욱 선명히 기억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선 선명함에 대한 착각일 테다.
한 장소를 100번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기억나는 순간이 5번뿐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100번이나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5개의 순간밖에 기억나지 않는 장소에 대해 5%의 선명함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일생에 딱 한번 다녀온 장소가 선명히 기억날 때 우리는 그 장소의 선명함을 100%의 선명함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5%의 선명함은 사실 5%가 아니라 500퍼센트의 선명함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그 다섯 번 뒤에 가려진 기억나지 않는 95번의 경험 때문에 강렬한 5번의 기억의 색깔조차 우리는 희미한 것으로 인식해버리고 만다.
우연한 단 한 번의 경험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때가 있다. 그것은 일종의 운명이나 기묘함, 독특함과 같은 "특이성"에 힘입어 아주 강렬한 인상으로 우리의 뇌리에 박힐 때도 있지만 의외로 그런 특별한 배경이 작동하지 않은 채 "우연히" 그냥 기억에 남는 경우도 꽤 높은 빈도로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석연치가 않다. 분명 자주 다녔던, 많이 가봤던 장소보다 딱 한번 가봤던 장소가 기억에 남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는 어떤 느낌적인 느낌이, 긁어도 긁어도 시원해지지 않는 발바닥 속의 가려움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 번의 강렬한 기억에 매몰되어, 일상적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잦아서 소홀히 여기기 쉬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기억과 추억들이 가벼워질까 우려되는 마음에 한 번의 특별한 경험보다 일상의 무수한 경험들이 갖는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한 번의 경험이 갖는 특별함은 분명 존재한다.
한 번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두 번이 되기 전까지 특별함을 유지하게 된다.
한 번은 한 번이기 때문에 유일하며 유일한 것은 특별해진다. 인간은 언제나 특별한 것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일생에 한번 있었던 일은 그것이 가진 경중을 떠나 오직 단 한번 있었던 일이라는 것 자체로 의미를 부여받는다.
생각해보자 연애를 열 번 해본 사람과 연애를 딱 한번 해본 사람 중에 연애의 감정에 누가 더 커다란 의미와 기억과 환상을 부여하며 살아갈 것인가. 2년에 한 번씩 자동차를 바꿔 타는 사람과 첫 차를 20년 동안 몰며 폐차시킬 때까지 함께했던 사람 중에 누가 더 차에 깊은 애정을 품고 살아왔을 것인가.
일생에 딱 한번 있었던 일. 그것이 장소가 됐건 음식이 됐건 상황이 됐건, 그저 스쳐 지나갔던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나의 의지와 생각이 담겨 진행되었던 어떠한 것이라면 그것은 나에게 특별하게 남을 수밖에 없다.그때 그 순간이 내 평생에 그것과 마주한 유일한 순간이었을 테니까.
단 한 번의 어떤 기억 때문에 괴롭다면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기억을 희석시켜 보는 것은 어떨까. 단, 그것이 치명적으로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