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사람

저항과 지지

by 정 호
누구에게나 거대한 존재가 한 둘 쯤은 있다


그 거대한 존재는 멘토, 스승, 선배, 부모, 원수, 라이벌, 후배, 형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존재하고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과는 큰 관련 없이 생성되어 한 사람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의 존재를 거대하게 느끼는 이유는 다양하다. 나에게 없는 압도적인 자산(부, 지식, 직업, 학벌, 외모 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일 수고 있고 내가 도달하고픈 어떤 것에 먼저 도달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평생을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내가 그리고 있는 이상향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나에게 수치를 안겨주었기 때문일 수도, 평생을 넘어야 할 거대한 장벽처럼 여겨왔던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그 거대함은 나를 압도하기도 하고 의지하게 만들기도 하며 우러러보거나 순종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는 한 사람의 행동양식을 때로는 부정적으로, 또 때로는 긍정적으로 조향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정적인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거대한 존재 앞에서 우리는 늘 위축된다는 점이다. 평생을 부모의 그늘 아래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온 성인을 생각해보자.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고 연애 상대, 직업선택, 일상의 스케줄까지 부모의 확인이 필요한 상태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지만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저히 부모의 그늘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들에게 부모는 "거대한 존재"로 이미 오랫동안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데미안-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처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알을 깨고 나와야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거대한 존재는 나를 가두는 장벽에 불과하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의지하고 우러러보며 순종할 수 있는 존재가 하나 둘 쯤 있는 것 또한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인생에 어른이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지표가 되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거대한 존재의 긍정적인 방향성에 대해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주식 차트를 공부할 때 가장 기초적인 이론으로 지지와 저항이라는 개념이 있다. 일정한 가격대를 뚫어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특정 구간에만 진입하면 얼마간 상승하다가 고꾸라져버리고 마는 지점. 그 지점을 보고 저항선이라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하락을 하다가도 특정한 가격대에 도달하면 공식처럼 다시 위로 튀어 오르는 지점이 있다. 이 지점을 보고 지지선이라고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저항선을 한번 뚫어내면 그 지점은 지지선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거대한 존재는 어쩌면 인생에 있어 때로는 지지선 같은 역할을, 또 때로는 저항선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부딪히며 깨내야 할 거대한 장벽으로 존재할 때에는 그만큼 강력한 저항선도 없을 테지만 한 번 뚫어낸 뒤에는 그만큼 든든하게 뒤를 지켜주는 지지선으로 변해있으니 말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알은 저항이자 장벽이지만 깨고 나온 뒤에는 다음 세상을 향해 도전할 수 있는 든든한 근력을 키워준 지지자로 변해있을 테다. 거대한 사람의 존재는 그래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늘 필요하다. 삶은 어차피 투쟁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투쟁에 승리하여 새로운 세상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 그것은 삶에 있어서도, 거대한 존재를 대함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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