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스승과 제자 사이에 허락된 특별한 마음

by 정 호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존을 위해 배워나갈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아이들은 먹고 자는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법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배움의 범위를 넓혀나간다.


이 배움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자신의 한 몸을 제대로 가뉘는 법부터 시작하게 되지만 어느 정도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배움이 완료되는 시점 이후의 배움은, 개인의 필요 혹은 의지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어지거나 그렇지 않다면 어느 시점을 끝으로 멈추게 된다.


보통의 경우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 된 이후 배움은 멈춘다. 생업의 바쁨 때문이 가장 큰 이유일테지만 그보다 더욱 본질적인 이유는 편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이겨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배움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필요에 의해서 배워야 하는 것과
기쁘기 때문에 배우는 것.


취업의 과정이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들, 예를 들면 입시를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나 자격증 취득, 승진을 위한 공부들, 도태되지 않기 위해 배워야 하는 것들은 필요에 의한 공부에 속한다.

하지만 배움이 꼭 필요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새로운 것을 깨닫는 과정 자체가 즐겁고 행복해서, 혹은 꼭 알고 싶었거나 익히고 싶은 기능들이어서,혹은 멋져 보여서, 때로는 내 안의 굴절된 욕구를 채워주고 싶어서 배움을 청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진 않지만 각자 자신만의 어떤 감정 때문에 배움을 이어간다. 그 감정은 대체로 기쁨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러한 배움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느 순간 나에게 가르침을 전해주는 사람, 즉 스승이라는 존재 앞에서 나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필요에 의해서 배우기 때문이건 기쁨을 위해서 배우기 때문이건 상관없이 드는 감정이다.


배움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배움의 시작의 순간에 우리는 언제나 초급자이며 까막눈이다. 아무리 자신의 분야에서 날고 기는 성취를 보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새로운 분야로 들어가 새롭게 배움의 과정을 거칠 때에는 처음 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오랜 시간 그 분야를 익혀낸 스승 앞에서 내가 알고 행하는 모든 지식과 기능은 한없이 작아보이기 때문이다.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사람 앞에서 내가 가진 것을 드러내는 일은 수줍으면서 멋쩍은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특별한 존재이고 싶다.


그간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제자들과 내가 한줌도 다를바 없는 보통의 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지점에서 내가 결코 특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에게 내가 특별하지 못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좋은 스승은 훌륭한 자극제이면서
동시에 쉽게 넘보기 힘든 거대한 산과 같다.


아이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데에다 자식까지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뛰어난 자질을 갖추었거나 장래가 기대되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로 기쁘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대로 내가 배움을 청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나를 가르치는 사람 역시 같은 마음으로 제자들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청출어람이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늘 그런 기분좋은 긴장감과 기대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로 서로를 여기는 인연을 마주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


한 인간에게 긴장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품게 되는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허락된 아주 특별한 감정이다. 이런 감정을 품게 되는 대상과 마주할 때, 어찌 어렵고 조심스럽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기분 좋은 부끄러움이며 한껏 마음을 담은 존경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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