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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Aug 25. 2020

부수적인 것들이 주는 의외의 행복

의외성이 선물하는 행복감

5년 정도 인연이 된 단골 미용실이 있다


머리 자르는 일을 귀찮아한다. 왁스를 발라 넘기고 넘기다 더 이상 머리카락이 중력에 끌어내려지는 힘을 왁스와 스프레이로 이겨내지 못할 때에 가서야 마지못해 미용실로 발길을 옮기곤 한다. 특별히 원하는 스타일도 없다. 그저 자르던 대로, 스타일링하기 쉬운 파마 정도를 5년째 반복하고 있다.  


머리를 자르고 우와! 정말 만족스럽군. 다음에 꼭 다시 와야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적은 한평생을 살아온 내 기억을 모두 뒤져봐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한데 왜 단골이냐고 묻는다면 머리를 하고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망쳐놓지는 않아서 혹은 그럭저럭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헌데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갔다가 기가 막힐 정도로 만족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것은 머리를 감겨주는 보조 미용사를 잘 만났을 때다. 내가 다니는 미용실에서 나는 항상 원장님에게 머리를 맡긴다. 하지만 여느 미용실이 그러하듯 원장님은 머리를 감겨주지 않는다. 미용실의 생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여느 조직이 그러하듯 아마도 막내나 신입 비슷한 그 어디쯤에 속해있는 직원이 머리를 감겨주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를 자르고 난 뒤의 기대감과 만족감이 어느 정도 일정한 수준을 이루고 있는 반면 머리를 감고 나왔을 때의 만족감은 어느 손을 만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가져온다. 한데 간혹 가다 정말 여기가 천국인가 할 정도의 느낌을 선사해 주는 머리 감김을 받는 날이면 그런 날은 머리를 감으며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아무거나 먹고 자라다 보니 웬만한 음식은 모두 맛있게 잘 먹는 식습관이 몸에 밴 것과는 별개로 음식의 고장 전주에서 평생을 살다 보니 나름 예민하게 맛을 구분하는 미각을 갖게 되었다. 한상 푸짐하게 차려지백반집이나 한정식 집에서 메인으로 나오는 음식들보다 한쪽 구석에 꾸역꾸역 자리한   가지 반찬이 의외로 입에 맞아 그것과 밥을 먹는 경우가 간혹 발생한다.


이 외에도 신상 햄버거가 출시되어 큰 기대를 품고 맞이한 버거 세트를 먹었는데 콜라가 제일 맛있다거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을 때보다 미지근하지 않고 시원한 단무지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피어오르는 그 시원한 단맛의 황홀감을 경험할 때처럼 우리는 부수적인 것들로부터 의외의 행복감을 느낄 때가 있다.


의외의 행복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의외이기 때문에 행복했던 것이다. 머리를 감겨주는 미용사가 매번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해 주었다면, 반찬이 메인 요리보다 결코 맛있을 수 없는 세상이었다면, 전국의 모든 중국집의 단무지가 시원하다면, 나는 이런 예상치 못한 의외성을 마주하지 못하고 살아갔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이유에서 의외성은 우리의 삶에 예상치 못한 재미를 주고 그 재미가 일정한 임계점을 넘어설 때 우리는 상당한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부수적인 것이 행복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기에 미처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서 기쁨을 느끼게 되그것은 서비스라는 이름을 달고 나의 마음을 무장해제시켜 버린다.


이처럼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것이 오히려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비슷할 때가 있다. 친구가 오디션을 보는 것을 따라갔다가 친구는 떨어지고 본인이 뽑혔다는 이야기를 연예인들의 입에서 심심치 않게 듣는다.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사람은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겉절이였던 사람이 오히려 드러나는 빛을 감추지 못하고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취미로 시작했던 일에 오히려 더 큰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다 보니 그것이 주 수입원을 넘어서게 되는 순간 부업으로 시작한 일이 본업으로 바뀌게 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놀면 뭐 하니에서 유재석이 유플래쉬, 유산슬, 라섹 등 여러 가지 부캐릭터를 설정하여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는 것이나 김신영이 본인의 이모를 콘셉트로 삼아 김다비라는 부캐릭터를 만들어 앨범을 내는 것 또한 부수적인 것이 본인 자체보다 큰 이슈를 만들어낸 사례라고 볼  있다.


고로 우리는 약간의 느슨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니 느슨함이라기보다는 메인스트림이 아닌 작은 샛길들에도 눈길을 줄 수 있는 오픈된 마인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한우물만 파라는 말은 어떤 때에는 맞겠지만 어떤 때에는 틀릴 수도 있다. 쩌면  우연치 않게도 우리 주변의 부수적인 것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의 인생의 중심으로 들어올지도 모르니 언제든 품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약간은 느슨하고 허용적인 마음으로 내 주변의 부수적인 것들을 대할 필요가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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