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지켜보는 것도, 갈등에 휘말리는 것도 지겹고 피곤한 일이다. 대통령 선거에까지 그 영향력을 끼치며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현시대의 대표적 갈등으로 젠더 갈등을 빼놓을 수 없다. 타고난 성별이 아닌 사회적 성별을 지칭하는 젠더라는 용어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서 차별이라는 카테고리 안의 여러 조연으로 활동해왔다. 하지만 근 몇 년 사이, 조연에서 주연급으로 급부상하며 여러 이슈들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담론이 되었다.
페미니즘과 젠더 관련 이슈가 이토록 위세를 떨치며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동안 사실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몇 가지 소수성(왼손잡이, 색약, 다한증, 사회복무요원 등)을 경험해 보았다는 것을 근거 삼아, 무의식적으로 나 정도면 평등의식을 탑재한 준수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한 인식은 성평등 의식에 관해서도 자연스레 스스로를 그러한 사람, 즉 성평등 인식 수준이 꽤나 높은 사람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포털 뉴스에 도배되는 젠더 이슈를 곁눈질로 쓰윽 훑어보는 것 말고 젠더갈등의 원인이나 진행과정에 대해 알아보려는 노력을 특별히 기울였던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젠더갈등과 관련된 책이 독서토론 도서 목록에 올랐다.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는 모르겠으나 젠더갈등을 다룬 책 한 권 정도는 읽어보아야 무엇 때문에 2030 남녀가 인터넷 상에서 그토록 싸우는 것인지, 그래서 어떤 세상을 그리고자 하는 것인지 조금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펼쳐 들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수긍되었던 부분과 납득이 어려웠던 부분, 그리고 내용 요약과 짧은 감상으로 글을 연결해 보고자 한다.
납득이 되는 부분
(1) 무엇보다 근대 국가의 징병제도는 남성들 간 차이들을 지우고 '남성'이라는 성을 기반으로 남성 범주를 만든다. 가장된 동일성을 가정하며 모든 남성은 동질적이고 평등하다는 명제를 전제한다. 남성들 간에도 차이가 있다. 군의 동일성은 이렇듯 허약한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초남성 공간을 생산한다. 초남성 공간은 남성성 원리를 군인 되기의 규범으로 삼는다. 국방부가 전투를 군의 핵심으로 놓고 남성적 전사 에토스를 표본으로 내세우는 만큼, 남성성 원리는 군의 통치 양식을 자기 통치로 삼아 수행된다. 여성들이 군에 진입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남성 중심성이 해소되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동일하지 않은 집단을 '타고난 성'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동일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구성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근대 사회에서 시민이 될 수 있는 남성들만 군대에 입대할 수 있도록 제한했던 점을 떠올려보면 군대라는 조직은 현대에 이르러서야 남성 전체에게 입대의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동일성을 부여해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셈이다. 군대 이슈가 성 대결 구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은 현대의 시대적 상황이 그렇기 때문이다. - 58p
(2) 챕터 2와 챕터 3을 통해 여성 군인의 역사와 여성이 어떻게 군대 안에서 지위를 획득해 나가고 있는지 기술하고 있다. 여성은 여성성(섬세함, 부드러움)을 바탕으로 기술적으로 진보하는 군 조직 안에서 새로운 기능을 발휘하여 지위를 획득할 수 있으며 군대는 더 이상 남성만의 것이 아닌 여성도 얼마든지 쟁취할 수 있는 영역에 해당된다며 여성의 능력과 남성의 능력 사이에는 차이가 없음을 피력한다. 하지만 이는 차이를 인정하는 평등처럼 보이지만 결국 남성성과 여성성을 뚜렷하게 구분하여 고집하고자 하는 전통적인 성 역할의 유지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3) 군 가산점은 남성에게도 형평성이 없다. 군 미필자나 공무원 시험을 안 보는 사람들에겐 필요 없기 때문.
납득이 어려운 부분
(1) '개똥녀', '된장녀', '김치녀'와 같은 호명에는 "군대를 가지 않는 이기적인 여성"이라는 딱지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 6p.
이런 용어들은 단지 사치스럽거나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용어인 줄 알고 있었다. 한데 이 용어에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이기적인 여성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물론 저런 현상이 벌어지면 인터넷의 일부 댓글에 "군대를 안 가서 그래"라는 조롱 섞인 댓글이 달려 있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허나 "군대를 안 가서 그래"라는 언술이 모욕감을 일으키는 상황 모두가 여성 차별적인 상황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 이외의 대상에게도 "군대를 안 가서 그래"라는 말은 모욕감을 주는 언어로 사용된다. 게다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 예를 들어 같은 여성이나 노인, 어린아이들조차도 "군대 한번 갔다 와봐라"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군대를 안 가서 그래"라는 말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여성, 노인, 아이)도 사용하고, 여성 이외의 사람들(남성)에게도 사용된다.
한데 그것을 개똥녀, 된장녀, 김치녀라는 혐오발언과 엮어 이 세 가지 용어의 근원이 마치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처럼 논지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남녀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불씨를 지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2) 군대는 여성에게 배제와 차별의 제도이고 이를 강화하는 전거이다. - 9p.
책에서는 군대의 역사, 특히 여군의 역사에 대해 상당 부분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특히 군대가 어떻게 남성성, 시민권과 연결되었으며 남성은 군대를 통해 어떤 사회경제적 이득을 얻어왔는가에 관해 힘을 주어 말한다.
과거의 군대가 남성의 취업을 도왔고 여성이 직업세계에 많이 진출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것이 맞는 말일 테다. 하지만 저자가 책에서 이야기하듯 2022년 현재의 남성들에게 군대를 다녀온다는 것은 어떠한 실질적, 정서적, 사회적 이득도 부여하지 못한다.
이런 생각은 어찌 보면 남녀 갈등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여러 이슈들 가운데 가장 핫한 쟁점인 군대 이슈에 관해 가장 근원적인 공방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지점이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응답은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 같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군대에 가면 되는 것 아닌가?
(3) 군사 활동은 남성의 몸에 적격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남성의 몸에 맞추어 발달되었다. 남성들이 주로 전쟁을 다루면서 남성의 몸은 그 일에 적합하도록 진화된 것이다. 전쟁 또한 남성의 욕망에 맞추어 그 형식과 전략이 발전되었다. 특히 강함과 전복 지배, 진화와 발전이라는 가치는 근대국가와 군대, 남성성을 서로 연결하며 이들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다. - 56p.
남성이 많이 참전하니 군사활동이 남성에 맞추어 발달되었다는 말은 구체적인 예시가 없어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예시가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렇다고 한들 이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아전인수 격의 말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전쟁과 군사활동은 왜 발생하는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대화와 협상, 경제적 거래와 온갖 권모술수를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무력을 이용해 힘이 센 사람이나 국가가 자신의 뜻대로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최종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이 바로 전쟁이다. 만일 남자 없이 여자들만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전쟁이 없었을까? 군사활동이 없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전쟁이나 군사활동과는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을까?
(4) 챕터 2와 챕터 3을 통해 여성과 남성 사이에 지적능력 차이가 없으며 이는 여군을 통해 증명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지적 능력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은 아마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여성 군인은 모두 장교에 해당된다. 여성이 일반병으로 징집되었던 적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는 없다. 여성이 군대에 입대하기 위한 방식은 부사관과 장교가 유일하다. 장교로 입대하는 여성이 뛰어난 지적, 신체적 능력을 갖춘 것처럼, 장교로 입대하는 남성 역시 뛰어난 지적, 신체적 능력을 갖추었을 것이다. 군과 관련된 젠더 이슈에서는 여성 장교와 남성 장교를 두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 전체를 두고 논의되어야 한다. 한데 여기서는 군 복무를 하는 남성 전체와 장교생활을 하는 여성을 두고 비교한다. 이는 비교 자체가 이상하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속에 들어있는 남성들의 분노는 "우리도 장교로 복무한다"라는 여성들의 답변으로 사그라들 수 없다. 그것은 평등이 될 수 없다. 진정한 평등을 외치려면 같은 조건에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5) 서구 국가에서 병역제도가 징병제에서 지원제로 변화하면서 여군이 증가되었다는 보고는 꽤 의미심장하다. 이제 군 복무는 시민권을 수행하면서 국민의 지위를 확보한다는 의미보다 전문 직업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그뿐 아니라 군사 활동에서 여성인력의 활용 가치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다. - 165p.
일단 서구 국가가 징병제였던 시절에 여성들도 강제징병이 되었는지 의문이다. 만약 그랬다면 지원제로 변화하며 여군이 증가되었다는 보고는 의미 있는 것이 맞다. 강제로 여성이 징집되던 시절보다 지원제로 바꿨는데도 여성의 군 지원이 늘었다면 당연히 어떤 의미가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징병제에서 남녀 모두에게 문이 열린 모병제로 바뀐 상황에서 여군이 증가되었다고 말한다면 이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논리임이 분명하다. 이는 자료의 출처를 확인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기억하고 싶은 부분 내용 요약
여성 징병제에 대한 입장
1. 불가론
(1) 생물학적으로 신체가 적합하지 않다. 신체능력이 부족하다. 헌법재판소와 국방부의 논리이기도 함.
(전쟁은 신체 능력으로만 하는가?)
(2) 월경과 출산 때문에 전투업무 수행에 장애가 될 수 있다.(월경과 출산은 늘 벌어지는 일인가? 월경과 출산이 전투업무 수행에 장애가 될 수 있기에 불가하다면 월경과 출산 때문에 업무 수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모든 직종에 취업 역시 금해져야 맞다.)
(3) 전시에 성적 학대와 같은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전쟁은 생과 사의 문제다. 성적 학대가 죽음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두려움인가? 또한 여성이 군인으로 참전하여 전쟁에 승리하는 것과 군인으로 참전하지 않고 전쟁에 패배하는 것 둘을 놓고 본다면 어떤 경우가 성적으로 학대당할 가능성이 있는 피해자의 숫자가 커질 것인가.)
저자 의견
여성은 시대 상황에 따라 징병의 대상에 포함되기도 하고 제외되기도 한다. 이는 불가론자들의 성별 분업 이념에 근거한다.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사회문화적으로 여성은 평화와 사랑의 상징이며 남성들이 돌아갈 곳이기 때문.
2. 반대론
의도가 불순하다. 성평등을 가져올 수 없다. 남성만으로 병력이 충분하다. 군대 개혁이 우선이다. (음....?)
법학자 윤진숙의 주장
(1) 가사노동과 양육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여성이 병역의무까지 지게 된다면 이중 부담이다.
(요즘 가사와 양육을 함께하지 않는 부부가 있는가? 그렇기에 여자가 가사 노동과 양육에 책임을 지고 있다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뿐더러, 설령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같은 논리로 가정 경제에 책임을 지고 있는 남성이 병역에 의무까지 지는 것은 이중 부담이 아닌가)
(2) 남녀평등이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차별이다.(관점에 따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3) 군대 안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남자도 성폭행 성추행을 당하며 어느 조직에나 성폭력 위험은 늘 존재한다. 게다가 이는 남성 전체를 잠재적 성폭행범으로 분류하는 생각이므로 엄연히 성차별적이다.)
영문학자 고정갑희의 주장
(1) 군대는 복합적인 체제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체제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여성은 군대라는 체제 안에서 남성과 동등함을 추구하기보다는 군대 밖에서 이 불합리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군비축소 운동, 병역거부 운동, 전쟁 반대와 같은 평화 운동.
(군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강제로 나의 시간과 공간을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군대 밖에서 군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운동을 한다는 것은 군대 문제를 둘러싼 남녀 갈등의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며 이는 남성들에게 시간과 공간의 박탈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으로 읽힐 것이다.)
가람의 여성 징병제는 과연 평등을 가져올 수 있을까?라는 글에 수록된 내용
(1) 여성이 군대에 간다고 해서 남성과 동등한 시민권을 획득하거나 남성 중심성이 약화될 수 없다.
(2) 여성 군인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성폭력이 끊이질 않고 있다.
(3) 군대 조직이 문제다. 군을 인권 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고 국방 예산을 감시하며 병역 비리와 방위산업 비리를 근절하는 노력에 방점을 둬야 한다.
(조직이 문제이기 때문에 조직을 정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남성들도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다. 이런 논쟁이 싫고, 군 가산점을 주는 것도 싫고, 군대에 가는 것도 싫다면 실제로 언급하고 있는 군대를 수정하기 위한 노력들을 이행해야 할 테다. 남성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저 시간 벌기, 내 한 몸 안위 지키기 정도로만 보일 것.)
저자 의견
급진주의자들(여성 징병제 반대파)은 주로 여성 군인을 피해자로 상정한다. 이는 편협하다. 실제 여성 군인들의 삶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 성폭력은 군대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에서나 발생하는 문제.
3, 남녀 공동 병역 의무제 찬성론
(1) 여성인력을 활용하자. 여성이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몫을 늘려야 한다. 여성 인적자원이 우수해졌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저출산 시대에 남성 군인을 대체할 인력이 절실하다.
(2) 국가안보에 남녀 구분이 없다. 병역의무를 통해 남성과 동등한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갖출 수 있다.
(3) 남녀 공동 병역의무를 이행하면 군 문화가 인권 친화적으로 바뀔 것.(이는 여성은 친화적이며 남성은 공격적이라는 젠더 통념을 강화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나는 여성 징병제에 찬성한다의 저자 주하림의 의견
(1) 스스로 힘을 가져야 한다.
(2) 그동안 가정생활에 고립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전우/동지애라는 동질감 안에서 상호 연대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3) 여성은 가부장제 사회를 뚫고 나와 보호받는 존재에서 보호하는 존재로 변신해야 한다.
(4) 여성의 의무복무가 강하고 평등한 대한민국을 만들 것이라고 본다. 이는 국제정치의 현실주의자들과 서구 성평등주의자들의 주장과 통한다. 이는 곧 약육강식의 세상에서는 강자가 살아남으니 힘을 갖추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성평등주의자들은 여성이 군에 온전히 진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을 제거해야 하며 동등한 참여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의견
공정성은 남성들의 인정 욕구를 정당한 것으로 설명해주는 논리다. 남성만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는 것은 남성에 대한 차별이며 여기서 남성들은 공정성을 '똑같이'로 여긴다. 그래서 성평등은 남성이 군대에 간다면 여성도 가야 한다는 '동일한' 행위를 뜻한다. 그것이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남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저자는 성평등주의자는 아닌 듯하다. 앞서 성평등주의자는 남녀가 동일한 의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권리를 쟁취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러한 성평등주의자의 주장이 평등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 남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냐며 비꼬는 뉘앙스의 자세를 취한다. 이는 성평등주의자들의 의견을 저격하는 셈이다. 불가론, 반대론, 찬성론을 모두 비판하는 저자는 양비론을 넘어 삼비론을 주장하는 셈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병역의무
징병제는 근대화와 관련이 있다. 근대화는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이었으며 한국의 근대화는 병역 이행을 산업경제활동으로 대체하거나 연계하여 군사와 경제를 긴밀히 연관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남성은 병역과 경제활동을 통해 국가에 통합되었고 자부심과 경제력을 쟁취하였다. 그것은 남성을 남성답게 만들어주었다. 한데 1990년대 들어 경제구조가 변화하면서 근대적 남성성은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중공업 사업은 사양화되어가고 기술, 서비스업, 금융업은 군 복무와 연결 짓기 어려워졌다. 그에 더해 군 가산점까지 폐지되는 통에 20~30대는 아버지 세대와 달리 군 복무를 시간 낭비로 읽는다.
세계적으로도 병역제도 안에는 병역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병역거부권은 유엔 인권위원회 제77호 결의안에 명시되어 있지만, 한국인들은 병역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 그들에게 병역거부 인정은 공정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80년대 이후 남성 출생자들의 군대에 대한 인식은 안 갈 수 있으면 안 가는 게 좋다는 의견의 비율이 굉장히 높다.)
그래서 병역을 선택할 자유권을 스스로 축소시킨다.
(병역을 선택할 자유권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병역을 원치 않으면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다는 소리일까? 군대에 안 가면 감옥에 가게 되는데 그것을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성 전쟁의 최전선 군대
시대가 변하며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남녀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과 여성을 확실히 구분 짓는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군대다. 남성 징병제는 남성과 여성을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점이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성만 짊어지는 의무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이 바로 출산이다. 심지어 2013년에 새누리당 신의진 국회의원은 엄마 가산점제를 입법하겠다고 발표까지 했다. 남성은 군인이 되고 여성은 어머니가 되는 이 구도는 근대 사회의 성별 분업의 기본 설계도이다.
우리의 사회적 논의가 여성이 군대를 가느냐 마느냐의 여부를 따지는 논의로 수렴되어서는 곤란하다.
더 나은 논쟁의 방향은 '여성'이 군대에 가느냐 마느냐가 아닌 '군대'는 갈 만한 곳인가다. 젠더 갈등이 아니라 '군대'가 논의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젠더 지형이 어떻게 변하는지 짚어야 하고, 웅성거림의 다양한 결도 펼쳐놓아야 하며, 젠더 관계의 변화가 군대 문화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것이 먼저다. - 61p.
맞는 말이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결을 정돈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어느 분야에서나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해마다 수십만의 남성들은 군대에 끌려가고 있고 그 가족들을 눈물을 훔치며 밤잠을 설친다. 그리고 그 남성의 숫자만큼 사연과 원망들도 쌓여간다.
저자의 주장처럼 다양한 논의를 위해서라도 여성은 직접 군대에 참여해야 한다. 밖에서 떠드는 것과 실제 상황에 처해있는 것. 둘 중 어느 경우에 더욱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인가. 해결책을 끌어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단상
논문을 뼈대로 해서 쓰인 책이라 그런지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말이 포함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런 식의 갈등이 왜 발생하는지, 그 갈등을 어떻게 봉합할 것인지를 살피기보다는, 군대 안에서 여군들, 여군이라기보다 여자 장교들이 겪는 고충과 감정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챕터를 할애하고 있다.
여군에 대한 사회적 인식, 성비 격차가 많이 나는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비합리적 관습, 여성이 받아온 차별, 불평등이 기본값으로 상정된 상태에서 받게 되는 처우 등, 여성이 군대 내에서 겪는 부조리는 상당하다. 군대 안의 여성은 소수다. 소수에 속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미 다수에 의해 유리하게 구성된 규칙과 관습에 맞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군대 안 여성들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들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들에게만 보이는 차별과 잘못된 체계가 분명 존재할 테니 말이다.
담론을 표면으로 꺼내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만드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데 분명 의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이 일반병으로 징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의 최전방 저지선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불평등이 해결되면 군대에 가겠다"라는 말은 순서에 맞지 않다. 군대에 들어가 불평등을 해결하겠다가 되어야 옳다. 제목을 보면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에 대한 대답을 들려줄 것 같지만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에 대한 대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주변을 빙빙 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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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을 토대로 가상의 상황을 한 번 그려본다.
(이 가상의 세계는 가사노동을 오직 여성만이 의무적으로 부담하고 있는 세계다. 이야기를 읽고 화가 나는 여성이라면 군대와 관련된 젠더 논쟁에 화를 내는 남성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 평범한 한 부부가 있다. 둘은 맞벌이를 한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남자는 여자보다 몸과 마음이 섬세하지 못하다. 이 남자 역시 그 평균에 속하여 몸과 마음이 거칠었다. 하지만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여성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남성도 다수 존재하며 그들은 가사노동에 있어서 여성과 동일하거나 혹은 더 뛰어난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남성은 이 사회에서 아직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가사노동을 의무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아직 여성들만이 가사노동을 "의무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여성들은 분개하여 가사노동을 분담하자고 제안한다. 월수금을 여성이 하면 화목토는 남편이 합시다. 그러자 남성들은 이렇게 답한다.
정말 가사노동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일까? 월수금 화목토로 나누는 것이 진정한 평등일까? 그건 평등에 대한 잘못된 프레임은 아닐까? 가사노동은 애초에 여성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진화해온 것은 아닐까? 가사노동을 여성들이 선점하였고 그 안에서 따듯한 모성, 가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때 남성들은 철저히 그로부터 배제되었다. 이는 애초에 남성들이 가정 안에서 가족들과 살을 비비며 따듯함을 나눌 기회를 박탈한 것과 다름없다. 여성들이 이제 사회로 진출하기 때문에 가사노동에 공백이 생겨 그것을 남성과 나누어 부담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진정한 평등이 아니다. 이는 성평등의 성취가 아니라 인력 활용의 측면이 크다. 가사노동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담당해왔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진출로 생긴 가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점차 남성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고 가사노동이라는 일은 '키도 크고 체력이 좋은' 남성에게 적합한 일이라는 '이유'가 생성되었다. 노동의 역사가 그랬다. 평등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인력의 교체가 일어나면 그에 적합한 이유와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사노동을 함께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성평등과 관련이 있는가? 이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될 일이다. 남성이 가사노동을 나누면 성평등 실현에 이로울까 아닐까라는 물음 안에서 우리가 던질 수 있는 다른 물음들은 지워진다. 남성의 가사노동 분배 논쟁은 과연 성평등론만으로 수렴되어도 충분한가? 남성이 가사노동을 나누면 성평등이 실현되는가? 좀 다르게 접근을 해보자.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가 되든 가사노동은 정말 할만한 것인가? 식사 준비와 설거지 빨래는 정말 가치 있는 것인가? 가사노동과 가정, 부모를 서로 연계 짓는 사유의 틀을 좀 다르게 숙고할 여지는 없을까?
일부 남성들의 그럴듯해 보이는 말을 듣고 여성들은 화가 났고 지난한 논의와 갈등이 증폭되는 동안에도 여전히 집안일은 여성들만의 몫으로 남아있다. 대체 정말로 뭣이 중헌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