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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최선의 선택은 없다. 고통도 기쁨도 언제나 함께하는 것

by 정 호

인물과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떤 불행의 서사가 펼쳐질까


소설은 대게 불행을 연료 삼아 쓰이고 읽힌다. 그것은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불행에 익숙한 사람들인 탓이며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더더욱 불행에 능숙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노라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만한 불행의 서사를 온몸에 휘감고 있다. 본인이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거부당한 여인, 어린 시절엔 수영선수를 꿈꾸었고 청년이 되어서는 뮤지션을 꿈꾸었으며 철학을 동경하고 가정을 이뤄 엄마와 아내가 되고 싶었으나 이러한 모든 것들의 결론에 다다르지 못하고 중간 혹은 결론의 가장자리 어디 즈음에서 표류하게 되어버린 자신을 바라보며 자괴감에 빠진다. 심지어 고양이의 주인이나 일주일에 한 시간짜리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라는 역할조차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하도록 자신을 몰아붙이는 세상을 향해 세차게 고함칠 힘조차 잃어버린 그녀는 결국 와인 한잔과 함께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그 대상조차 명확지 않은 흐릿한 소리로 "보고 싶다"는 짧은 한마디의 말과 함께 종이에 짧은 글을 휘갈겨둔 채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다.


도입부에서 묘사하고 있는 노라의 이야기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주인공의 불행한 서사에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누가 더 불행한가 내기를 하기 위함이 아닐지라도 소설의 주인공들은 으레 일정 수준의 불행을 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캐릭터의 매력이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핵심적인 도움을 주는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욱 주인공의 불행 서사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는 결론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불행한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되는가?


이것이 불행한 주인공을 마주하며 우리가 품게 되는 근원적인 궁금증이다. 잘됐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마음과, 세상 일이 어찌 그리 쉬운가? 어디 어떻게 흘러가는지 한번 지켜보겠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양 사이에 두고 우리는 소설가가 이야기를 얼마나 재주 넘치게 풀어가는지 지켜보게 된다.


소설은 하나의 가정으로 전체의 뼈대를 삼고 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최선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가. 무수히 많은 후회의 순간들, 무수히 많은 잘못된 선택의 순간들로 되돌아가 기존에 내가 했던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한다면 정말 후회 없는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노라는 첫 번째 후회를 되돌리기로 결심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 직전에 파혼했던 그 남자와 결혼하여 시골에 펍을 차리는 인생을 살아보기로. 하지만 그곳 역시 천국은 아니었다. 불타는 열망을 두 눈에 담은 사람을 사랑하고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과 그 열망을 함께 이뤄가는 것을 꿈꾸었지만 꿈은 실현되는 순간 현실이 되어버리기 때문일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도, 결혼 이후에 펍을 오픈하는 것도 모두 성공했지만 성공은 실현된 뒤엔 빛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인지 노라가 그토록 바랬던 삶은 더 이상 그녀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노라, 밴드는 당신 꿈이지 내 꿈이 아냐"

돌이켜보니 그 말은 한층 더 마음이 아팠다. 결혼 전에 노라는 옥스퍼드주 시골에서 펍을 운영하고 싶다는 댄의 꿈을 자신의 꿈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펍을 운영하며 살고 싶다는 댄을 사랑했고 그의 꿈을 자신의 꿈처럼 여겨 결국 결혼 후 펍을 운영하게 된 그녀에게 내던져진 댄의 한마디는 차갑다 못해 오싹하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서로를 응원하며 살아나갈 힘을 북돋와주는 것은 아닌가. 상대방의 꿈을 이토록 단칼에 잘라 자신과 떼어놓는 태도에서 어찌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그 후에도 주인공 노라는 자신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펼쳐졌을 경험 해보지 못한 여러 종류의 삶을 탐험하며 삶의 진리를 서서히 배워나간다. 고양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집 밖에서 고양이가 죽게 놔뒀다는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고양이가 집안에만 머무는 삶을 선택해보지만 사실 고양이에겐 선천적 심장병이 있어서 집안에만 가둬두고 키울 경우 더 일찍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양이를 마음껏 뛰어놀게 하여 밖에서 죽게 만들었던 그 삶이 되려 고양이의 심장근육에 도움이 되어 가장 장수할 수 있었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노라의 기억 속 후회의 저장 공간에서 '고양이를 돌보지 못해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후회의 기억은 희미하게 지워진다.


그 외에도 절친한 친구와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기로 해놓고 떠나지 못했던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수영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흥미와 관심을 끄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영에만 몰두했던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사랑과 우정, 성공처럼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향해있는 삶을 선택해도 그 안에는 예상치 못했던 절망과 좌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의미 있는 삶을 위해 빙하학자가 되어 극지방에서 연구하는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로라 나도 당신과 같아요. 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이동자들"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지금껏 수많은 삶을 경험했어요. 안 해본 일이 없고, 지구 상의 모든 대륙에서 살아봤습니다. 대략 300번 정도 될 겁니다. 그런데도 아직 내가 원하는 삶은 찾지 못했어요. 영원히 이런 상태로 사는 걸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영원히 살고 싶은 삶은 결코 없을 겁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나의 삶의 변주들을 300번 씩이나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삶을 찾지 못했다는 위고의 말에서 아득한 절망감을 느낀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어떤 변화를 주더라도 결국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드는 삶을 골라낼 수 없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 희뿌연 연기를 잡으려 버둥거리는 헛된 움직임과 비슷해 보인다. 그것은 정녕 손에 쥘 수 없는, 찰나의 순간에만 잠깐 나타났다 사라져 버리고 마는 신기루와 같은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작가는 진부한 진실을 말한다. 300개가 넘는 삶의 변주를 둘러봤음에도 불구하고 위고가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삶을 고르지 못한 까닭, 그리고 주인공 노라 역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을. 그것은 바로 그들이 지금껏 관찰해온 삶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삶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살면서 언제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려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의 생각을 나의 생각인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꿈이나 인생도 마찬가지다.


이 도서관에 들어온 이후로 지금까지 노라가 선택했던 삶은 사실 모두 다른 사람의 꿈이었다. 결혼해서 펍을 운영하는 것은 댄의 꿈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는 것은 이지의 꿈이었고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빠의 꿈이었다. 노라가 빙하학자가 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꿈마저도 도서관에서 엘름 부인과 나눈 대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밴드의 삶은 늘 오빠의 꿈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의 고유한 생각이라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다 어딘가에서 보았거나 들었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드는 외부의 어떤 자극이 있었을 테다. 그리고 타인의 기대나 바람 가치관은 서서히 알게 모르게 나의 삶으로 스며들어와 마치 내가 처음부터 그것을 진짜로 원했던 것처럼 나의 생각과 삶을 조종해 나간다.


나 역시 몇 번의 그런 경험들이 있다.


고등학생 때 사관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꿈꿨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즈음에 절친한 친구가 함께 사관학교에 진학하자는 제안을 했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비싼 사립대학교는 꿈도 못 꿀 처지였기에 학비 전액을 국비로 지원받을 수 있다는 말과, 24살부터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장교라는 군대 내 지위는 스무 살을 앞두고 슬슬 군대를 생각해야 할 십 대 후반의 청년에겐 메리트 있는 제안이 틀림없었다. 더군다나 당시 가장 가깝고 의지가 되던 친구의 제안이었고 청소년 시기에 친구의 파급력은 실로 엄청나서 그렇게 친구의 꿈은 나의 꿈이 되었고 나의 꿈이라는 확신이 들자 그러한 선택 이후에 따라올 단점들을 합리화하고 있는 자신을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되었다.


신체상의 이유로 결국 사관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포기하고 차선책으로 교대를 선택해 교사로서의 삶을 살아오면서, 그리고 그간 이런저런 경험을 확장하며 어느 순간 내가 정말 군대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만일 내가 그때 신체상의 이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군인의 삶을 쟁취하기 위해 밀고 나갔더라면 아마 어찌어찌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을 했겠지만 군대에서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나는 지금 그 친구를 원망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 안에서 예상치 못한 무수한 마주침으로 인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때 그 꿈은 나의 꿈인 것 같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의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노라는 그렇게 수많은 삶을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가장 최선의 삶인 것처럼 보이는 삶에 정착하려 한다. 안락과 평온 사랑과 성취, 좋아 보이는 거의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는 삶. 노라는 그렇게 마음에 드는 삶을 드디어 찾아냈고 잠드는 순간마다 자정의 도서관으로 되돌아가게 될까 두려워졌다.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삶을 선택하기로 마음먹게 되면 도서관에 대해 잊어버리게 되고 선택하기로 한 삶의 기억들이 퍼즐 조각 맞춰지듯 떠오른다는 안내자의 말처럼 묘한 기시감이 들 때마다 기시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의 공백을 메우며 노라가 이 삶에 비로소 정착하려는 것처럼 이야기는 클라이맥스로 흘러간다.


완벽한 삶은 없다는 것.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라는 것.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 남은 인생을 채우기 위해 가능성이 있는 모든 행위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말하고 싶은 핵심 주제다.


주제는 평이하다. 소재 역시 평행이론과 다중우주에 관한 내용으로 이미 대중문화를 통해 꽤나 다뤄진 소재로 어디에선가 많이 봤음직한 느낌이 든다. 완전히 새롭거나 기발한 소설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선택"과 "후회"라는 큼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주인공 로라가 겪는 다양한 삶의 양태와 각각의 삶의 양태 속에 섞여있는 서로 다른 후회의 포인트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선택과 후회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반추해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 있어서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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