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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동사의 맛

재미는 없지만 귀한 책

by 정 호

도교육청에서 지원하는 글쓰기 연수에 신청했다. 일회성 특강 형식의 연수가 아닌, 한 달에 한 번씩 총 10회에 걸쳐 1년 동안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 연수였다. 주제별로 팀을 나눠 팀별로 작가님을 한분씩 멘토로 모셔 함께 책을 읽고 한 달에 한두 번씩 만나 글을 쓰며 삶을 나누는 귀한 자리에 운이 좋게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앉은자리에서 한 권을 독파해내는 사람도 있고 책 한 권을 읽어내는데 며칠, 몇 달, 심지어는 몇 년씩 걸리는 사람도 있다. 책 한 권을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읽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곁에 두고 읽는다고 하여 책 내용이 머리에 많이 남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집중력이 흐려져 책에 흠뻑 몰입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하지만 연수의 특성상 일정 기간을 두고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열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모일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책 한 권을 여러 번 쪼개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읽고, 함께 글을 쓰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꽤 인상 깊은 순간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낯선 사람들과 책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서로가 쓴 글을 나눠 읽고, 첨삭하고, 서로의 느낌을 공유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온전히 이것을 원하는 사람들의 자발성에 힘입어 시작된 모임이라는 점이 그런 감정에 더욱 부채질을 했다.


사전을 보면 모든 낱말이 분명히 저마다의 뜻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다른 낱말에 기대고 있을 뿐 그 자체로는 이도 저도 아닙니다. 낱말들이 서로를 눌러보고 눌러들어 주지 않는다면 어떤 낱말도 제 뜻을 가질 수 없을 테니까. 삶 또한 그렇지 않을까. 서로 눌러봐 주고 눌러들어 주면서 의미를 찾는 것일 뿐, 낱낱의 삶은 어차피 다 이도 저도 아니니까. - 91p (눌러듣다, 눌러보다.)


나이를 먹을수록 모임의 숫자는 늘어만 간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꾹꾹 눌러봐 주고 눌러 들어주는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굴러가는 모임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모임에 다녀온 뒤 충만한 기쁨보다 헛헛한 마음이 먼저 가슴 한켠을 채우고 있음이 불현듯 느껴질 때, 더 이상 어떤 한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닌 조직의 구성원 중 하나로만 느껴지게 될 때, 촘촘했던 관계의 그물망은 한없이 느슨해진다.


서로가 써온 글을 꾹꾹 눌러 읽어주고 눌러 들어주며 각자의 삶과 그 안의 의미를 알아봐 주려 노력하는 시간과 사람은 그래서 귀하다. 올 한 해는 꾹꾹 눌러가며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이 생겨 좋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을 단순히 유명인의 허세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아는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피상적 관계를 맺는 사람의 수가 늘어날수록, 발이 넓고 아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한 인간은 도구적 존재로 전락해 갈 수밖에 없다. 유한한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관계의 확장은 결국, 한 사람을 깊이 알아갈 시간과 나라는 사람을 깊이 알려줄 시간을 갉아먹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반드시 넓다고 얕기만 한 것도, 좁다고 깊기만 한 것도 아닐 테지만 확장에서 비롯되는 피로감이나 전과 같지 않은 관계성의 변화에서 헛헛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나를 알아주는 사람,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정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하다.


빨다리다 : 빨고 짜고 널고 다리는걸 한 번에 표현하는 단어. - 135p (빨다, 빨다리다.)


참으로 효율적이다. 한 번에 이토록 많은 과정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편하고 쉬워서 좋다. 일일이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이 어렵고 지리할 때가 있다. 길고 지난한 과정을 설명하는 과정도, 애써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의 답답함도 모두 고단하다. 그런 때 이 단어처럼 단번에 촤르륵 설명해주는 방식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 전쟁이 터져 온 가족이 피란길에 올랐다가 구사일생으로 집에 돌아온 날, 남자의 할머니는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밥을 안치고 텃밭에 일구어 두었던 열무를 뽑으려다가 그만 불발탄이 터져 폭사했단다. 남자의 할아버지가 얼른 할머니에게 달려가 보니 배가 터져 창자가 쏟아져 나왔는데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고. 남자의 할아버지는 부랴부랴 할머니를 안고 냇가로 뛰면서 남자의 아버지에게 쏟아진 창자를 들고 따라오라고 외쳤단다. 남자의 아버지는 제 어미가 쏟아 놓은 창자를 손에 들고 아버지를 따라 냇가로 뛰어가서는 흙이 잔뜩 묻은 창자를 씻어 다시 어미의 배 속에 넣으려 했지만 그땐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고.

"그때 아버지 나이가 열다섯이었어요. 어미의 창자를 손에 그러담고 냇가로 뛸 때 창자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을 겁니다. 애끊는 심정이나 애끓는 마음이라는 말, 전혀 과장된 게 아닌 셈이죠. 아버진 돌아가실 때까지 열무는 전혀 입에 대지 않으셨어요." - 155p (애끊다. 애끓다.)


끔찍하고 처참한 이야기다. 애끊는 상황을 직면한 뒤 평생 동안 애끓는 심정으로 살아왔을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아버지에게 열무는 평생도록 어떤 대상이었을까. 후회와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그것을 해제하거나 녹여낼 방법이 도무지 없어 외면할 수밖에 없는 존재, 아마 아버지에게 열무란 그런 존재였을 테다. 바라만 봐도 그날의 애끊는 상황이 떠올라 애끓는 마음이 될 테니 고개를 돌리는 것 말고 다른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으랴.


슬픔의 서사가 녹아있는 대상물이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큼 기쁨인가. 무엇을 바라보기만 해도 시절의 슬픔이 떠올라 순식간에 나를 우울의 늪으로 끌어당기고 마는 그것은 가히 세이렌의 노래와 같다. 기묘한 아름다움이라는 환상에 휩싸여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말이 다소 과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인생이란 결국 사랑과 죽음 양갈래 길을 사이에 두고 질주하는 경주와 같다. 비탄과 슬픔 우울과 같은 종류의 감정에 자주 빠지는 것은 그래서 건강하지 않다. 그런 감정들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슬픔의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유일하다. 첫째. 내 안의 슬픔을 발동시키는 대상물과의 마주침을 없앨 것. 둘째. 기쁨을 발동시키는 대상물들을 늘릴 것.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기에 우리의 생은 늘 헤매고 방황하며 부딪히는 일들로 가득하다.


국어사전에서 동사를 찾다 보면 말이죠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로 끝난다는 겁니다. 기본형 종결어미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그것은 족쇄입니다. 동사를 기본형으로 쓰는 경우가 얼마나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본형이라는 것은 현실에는 없는 허상 같은 겁니다. 이제까지 그렇게 살아왔어요. 나 말입니다. 마치 나라는 사람의 기본형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실제의 나를 얽어매고 옭아매는 족쇄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 157p (얽어매다, 옭아매다.)


작가는 국어사전의 기본형을 들춰보다가 생의 진실에 다가섰다. 기본형은 중요하지만 실제로 현실 언어생활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람도 그렇다. 남들이 바라보는 나, 누군가가 특징짓는 나, 어린 시절의 나, 학창 시절의 나, 직장에서의 나, 가정에서의 나,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나, 모두 나다. 그런데 어떤 내가 과연 기본형의 나인 것일까. 그것은 나를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테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나의 기본형은 무엇일까. 그런 것은 없다. 나는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기본형에 갇혀서는 안 된다. 나는 누구든 될 수 있고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기본형에 갇혀버리는 순간, 변화와 진화는 저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나는 결국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읽기에 참으로 적합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쓰다 보면 단어를 앞에 두고 헷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세상이 좋아져 맞춤법 자동 검사 프로그램에 의해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어느 정도 보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상황에 적합한 단어를 머릿속에서 떠올려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어렵사리 떠올린 단어가 적절하지 않은 줄도 모르고 사용해버린다면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워 지는 건 시간문제일 테다. 그래서 이 책은 글을 쓰려는 이들에게 유효하고 필요하다. 단어가 빈곤할 때, 반대로 단어가 풍족하다는 착각이 들 때, 적확한 설명을 곁들여줄 친절한 안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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