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년을 읽어줄 것인가
소년원 직원의 감정보다 소년의 감정이 더 신경 쓰였다. -26p
사진의 레스토랑 예쁘지? 저기가 쥬제뻬가 운영하는 시칠리아 식당의 정원이야. 야외 테이블에서 저녁 먹으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과 저기에 가게 되면 내가 소개해서 왔다고 쥬제뻬에게 꼭 말해. 아마 더 맛있는 음식을 해줄 거야. 의도를 지닌 이야기였다. 소년의 마음에 하고 싶은 일을 하나 만들어주고 싶은 의도 - 54p
아이들에게 솜사탕을 주었다. 그러고 싶었다. 솜사탕은 어른이 아이에게 주는, 그것도 사랑스럽게 여기는 아이에게 어쩌다가 드물게 한 번, 선물로 주는 간식이다. 집에서 먹는 일상의 간식은 아니다. 솜사탕이라는 말 앞에서 이런 풍경이 떠오른다. 어린이날 나들이 가서 아이가 풍선처럼 매달린 솜사탕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 엄마나 아빠가 큰 마음먹고 하나 사서 아이 손에 들려주는 풍경(중략) 솜사탕을 주는 마음. 이 마음은 '네가 아이 같다, 귀엽다, 사랑스럽다.'와 같은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주고 싶었다. 솜사탕을 주니 소년들이 피식 웃는다. - 135p
민우는 생애 17년 만에 첫 번째인 일이 두 가지 생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재미있는 책을 만났고, 자신만을 위해 책을 읽어준 최초의 어른이 생겼다. 이 사실이, 나는 눈물겹다. - 155p
십 대 후반에 비로소 책과 만나게 된 소년이 책과 나누는 첫인사. 이 첫인사가 귀하게 느껴졌다. 그러고는 곧 씁쓸해졌다. 이렇게 멀쩡한 소년이 감옥에 와서야 책과 조우하게 되었다니... - 203p
이 순간, 나의 안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겨를 없이 무너진다. 무너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벽 아니었을까. 그 벽의 한 귀퉁이가 와르르 무너졌다. 무너진 틈으로 이 녀석의 존재가 현실의 무게로 묵직하게 전해져 온다. 이 녀석이 나에게 아무 끈도 닿아 있지 않은 타인이 아니게 되었다는 신호다. - 46p
민우라는 아이의 기질을 몰랐더라면 6개월 간의 은신을 게으른 성질 탓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이렇게 대책 없이 무기력한 사람들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스치듯이 했을지도 모른다. 민우라는 아이가 어떤 성품과 기질을 지녔는지 조금 알고 나니, 그런 정황이 짐작이 되었다. - 211p
가해자인 소년을 영원히 가둘 수 있다면 그저 가두면 된다. 가두는 것만으로 죗값을 치르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는 곧 우리의 이웃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무엇보다 영혼을 지닌 하나의 존재로 우리 곁에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죗값을 치르는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하는 까닭이다. - 215p